수능 시험이 끝난 밤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수능은 그렇게까지 큰 행사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수능 날은 기억이 생생하다. 다음 날이 수능이라고 학교에서 일찍 집에 보내줬는데 집에 돌아와 빌라 앞 정자 같은 데 앉아서 초코렛을 먹었던 것 같다. 이렇게까지 긴장감이 없는 수험생이었다니.. 그 날은 기모가 얇게 들어간 곤색 DKNY 츄리닝을 입었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오는 애들을 보면서 '아, 교복 정말 불편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다. 게다가 맨 뒷 자리여서 꼭 재수생 같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공부 많이한 다음 날 머리를 안감는다던지, 그때 입었던 옷을 입어야한다던지 하는 세세한 징크스는 없었지만 고3 시절 매일 깔고 앉았던 방석을 품에 안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과 포도 쥬스가 담긴..
무서운 줄 모르고 펄펄 끓는 보일러를 잠재우고 어제 만들어논 카레로 점심을 먹고 나니 두시가 좀 안됐다. 조금 큰 식물들을 집에 들여야지 하다가 오늘이다 싶어서 함께 집하장에 가서 드라코, 떡갈나무, 극락조를 데리고 왔다. 화분을 사고 분갈이까지 마치고 앞자리를 양보하며 퇴근길 이전에 돌아왔다. 해가 진 이른 저녁에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졌는데 오늘인 것 같아 집에 있던 고무나무도 두 개의 화분으로 나눠 심어주고, 무럭무럭 자라는 스투키도 새끼를 모아서 작은 토분에, 어른들도 두개의 토분으로 분갈이를 해주었다. 스투키 둘, 고무나무 하나, 알로에 하나, 율마 하나였던 화분이 스투키 셋, 고무나무 둘, 새로 데려온 아이 셋까지 늘었다. 집안이 초록초록. 같이 잘 살아보자. 율마는 향도 좋고 색도 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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