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늘 둘도 없는 사이였으니까, 태어나서 단 한번도 엄마와의 관계가 어려워질 거라곤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지금에와서 이렇게 되다니 당황스럽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신랑의 첫 출근이다. 박봉에 출근시간도 이르고 일하는 시간도 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힙한 빵집이라 배울 게 많을테니까 호주에서 돌아와서 타인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것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래저래 부담이라는 단어가 목 끝까지 차오르는 밤이다. 일찍 잠을 청하려고 누웠지만 둘 다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결혼한 지 꼭 2년이 되는 날이다. 선물같은 거 사지 말고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자던 약속을 지키며 굳은 의지로 아무 것도 안한 우리 부부. 집 가까운 양꼬치 집에서 배부를 때까지 칭따오 한 병, 하얼빈 두 병에 양꼬치랑 꿔바로우까지 배 부르게 먹고 영화 한편 보고는 자려고 한다. 신랑은 벌써 잠이 들었다. 평소와 같은 오늘, 2년 전 오늘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종일 아주 기쁘고 바쁘게 지나갔다는 게 아주 먼 일 같이 느껴진다. 일찍 일어나서 좋은 컨디션이어야 하는데 하고 잠 못 이룰까봐 따뜻한 우유를 데워마시고 호텔에서 잠을 잤었다. 우리 자신의 아름다웠던 하루만큼 같이 사는 매일이 소중하다. 아름다운 성당, 고마운 부모님과 친구들, 더없이 좋았던 제주도, 먹어도 먹어도 살이 안찌던 ..
잠들지 못한다. 워낙 운동량이 없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이 시간에 잠들지 못하면 당연하게도 좋은 생각보단 걱정이 더 많다. 그래서 매일 걱정하다가 해결책도 없이 잠이 들고 늦잠을 자고 늦은 하루를 시작한다. 다행스럽게도 하루 중 대부분은 늦은 밤의 걱정은 잊고 즐겁게 지낸다. 하지만 다시 밤이 되면 신랑은 먼저 잠들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내 인생의 막연함과 나의 능력없음, 엄마에 대한 부채감과 건강에 대한 걱정, 동생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아빠에 대한 고마움과 짜증 같은 걸 느낀다. 오늘은 더불어서 시어머니에 대한 정의할 수 없는 감정도 함께다. 이제 하루만 더 쉬면 연휴도 끝나고 결혼한지 꼭 2년이 되는 날이다. 아주 대충이지만 이 과정이 끝나면 그 다음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하고 생..
맛있게 타코도 먹고 사야지 했던 문구들도 다 샀고 우연히 전시를 보았는데 탁 트이고 볕이 잘 드는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기회되면 가봐야지 했던 카페를 들어갔는데 여긴 반대로 어두워서 더 예뻤다. 아름다운 공간이 잠시간 우리에게 주는 호화로운 기분. 부자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 배운 건, 부자는 헛돈을 안쓴다. 나의 욕망에 대해서 분명히하고 가치있는 곳에 돈을 써야지. 언제나처럼 앞으로 뭐하고 살면 좋을지 생각도 하고 긴 연휴가 끝에 알차게 보낸 주말이다.
동묘에 구경을 갔다. 커다란 나무 바구니랑 유리컵 같은 걸 사고 싶었는데 주로 옷이 많아서 구경을 슬슬 하고 걸어서 이런 게 여기 있구나, 나중에 올 일이 있으려나 하면서 걸었다. 옷 만드는 걸 배우고 있다보니 걸어오는 길 마다 보이는 도매 상가, 신발 상가, 가방 상가, 부자재 상가, 기계 주름 잡는 집들이 다르게 보였다. 하긴 그동안은 걸어본 적 없는 동네기도 했고. 광장시장에 가서 빈대떡에 막걸리나 한잔 하고 집에갈까 하고 시장에 들어섰는데 세상에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시장을 빠져나가는데만 이십분이 넘게 걸렸다. 신랑이 있었던 경찰서 앞에 가서 이게 벌써 십년 전이네 하고 곱창에 소주 마시면서 데이트 기분도 만끽했다. 저마다의 삶이 있는거지. It will e..
오늘은 친정에 다녀왔다. 결혼하고 서울에서 맞는 첫 추석. 시댁에는 진작 다녀왔고 친정은 동생이 내내 와있어서 컨디션을 보고 움직인다고 오늘에야 다녀왔는데 그 마저도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컨디션은 괜찮았는데 차를 타고 나가고 싶다고 보채는 바람에 점저로 피자와 김밥을 나눠 먹고 다같이 액션 영화를 한 편 보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서 갑자기 아빠에게 안녕을 고하고 엄마는 저녁 찬거리를 챙기고 동생은 양말을 신고 나와 신랑도 등 떠밀려 신발을 신고 나왔다. 오랜만이지만 익숙한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동생이랑 신랑이랑 함께 타고 강남까지 왔다. 동생이 오랜만에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를 보고싶어한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는 척 타고 헤어지는 아쉬움도 조금 미룰 겸 편하게 타고 왔는데 언제나 헤어질 때가 힘..
2011년이면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그러니까 스물 일곱살.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이다. 나랑 어디 갈래? 하는 말에 곧바로 응 이라고 대답하자마자 서울을 벗어나 충주호까지 갔던 날이다. S하고 J하고 같이 갔는데 셋은 이미 잘 아는 사이고 나는 다 모른 채 멀리까지 갔다. 차에서 아는 노래가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약간은 외로운 기분이 드는 하루였다는 것도. 이 다음에 다 같이 산에 가자고 얘기했었는데 두 사람은 못가게 되서 만난지 얼마 안됐을 때 둘이 여행을 가게 됐었다. 그날 서방이 믹스 커피를 마시고 체했을 때 등 두들겨줬을 뿐인데 그게 고마웠다고 했었지. 가는 길에 사과도 나눠먹고 밤에는 카스도 나눠 마셨다. 그 뒤로 계속 우리는 만났고 그해 빼빼로데이,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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