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김애란 - 바깥은 여름, 김애란. 문학동네.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비행운, 김애란. 문학과지성사. + 사진 속 책은 니체의 말. 다행인지 아직까지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먹고 사는 '일'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아마도 계속해서 책 옆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건 타인의 인생을 망칠 수 없는 영역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 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 달려라, 아비. 영원한 화자. 김애란. 창비. + 아.. 나는, 누군가 평생 읽지 않을 것 같지만 이 문장을 읽는다면 나를 생각하게될까. 나는, 그래도 나는. 나는 주저앉는 사람이다. ..
그때 나의 몸은 말을 몰라서 어제도 내일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내 말들이 없는 날들은 기억도 없이 흩어지는 것도 그런 까닭일까. 여름날이었고, 사포처럼 반짝이는 햇빛이 빳빳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 세상에. 이런 문장이라니. 참. 나는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상상하건대, 어쩌면 아버지는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미안해서 못 오는 사람, 미안해서 자꾸 더 미안해해야 되는 상황을 만드는 사람. 나중에는 정말 미안해진 나머지, 못난 사람보다는 나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고 싶었을 만큼 착한 사람이 아니었을거라고..
이동진 : 그건 인간에 대해서 평가할 부분이고, 김애란 : 괴리에서 흔들리면 흔들리는 기록을 남기는 방법도 있을 거구요. (중략) 소재를 이야기거리로 소비해버리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을 가지려고 해요.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장대를 대하듯, 큰 말이잖아요. 세대니 계급이니, 그럴 때 저희 엄마 얼굴에 아빠 얼굴에 씌워보려고 해요. -소재를 이야기거리로 소비해버리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 T_T + 조심스러움을 가진 작가, 고집스러운 소심함이랄까 그런 것을 가진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그래서 응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아이히만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아렌트가 직면한 문제였다.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아이히만에게 그녀는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의 책임을 부과한다.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상부의 명령이 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유대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수행할 임무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성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서 '사유'란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권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의무'라고 강조한다. 베버가 지적했던 것처럼 현대 사회는 분업화와 전문화의 과정을 통해 구조화된 사회이다. 분업화와 전문화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대해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조직에 속해..
곧이어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그렇게 쉬운 생각을 그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별안간 뺨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빨리 한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나왔다. 결국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크게 울어버리고 말았다. -비행운, 너의 여름은 어떠니. 김애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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