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기 드문 조선기와 지붕이라느니 아니 양기와일 거라느니 의견이 분분하지만 품위 있어 보이는 데 비해 유지하기가 힘들거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다 틀린 말이다. 원래 있던 초가 지붕을 걷어내고 올린 지붕은 조선기와도 양기와도 아닌 합성수지로 만든 가짜 기와이다. 공장에서 지붕 형태로 통째로 찍어나온다. 합성수지는 가볍고 힘이 세다. 이번 수해에 집이 형체도 없이 유실됐다 해도 지붕만은 끄떡없이 먼바다까지 떠내려갔을 것이다. 나는 마모도 소멸도 안 되는 것에 대한 병적이고도 비밀스러운 혐오감을 갖고 있었지만 관리하기에 편하고 저렴한 것을 선호하는 남편을 말리지 못했다. 술 먹고 들어오면 오늘도 안 내다버렸냐고 생지랄을 하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요. 견디다 못해 어느 날 정말 내다버렸어요. 전부..
그걸 쳐다본다는 건 청승을 떠는 것처럼 보일 테고 내가 청승을 떨면 식구들이 나를 불쌍해할 것 같아 싫었다. 나의 최초의 자의식이었다. 내 눈엔 영원히 펄펄 날아다닐 것처럼 보이던 할아버지가 동아줄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안간힘을 쓰는 걸 본다는 것은 환멸과 비애의 극치였다. 불쌍한 할아버지, 그때 할아버지에게 위로가 된 건 그들의 신바람이나 덕담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끼쳐오는 타관의 냄새가 아니었을까. 내가 할아버지 두루마기 자락에서 대처의 냄새를 즐겼듯이. 돌이켜보면 기억의 가장 밑바닥, 취학 전 시골에서 보낸 유년기는 온통 칭찬받고 사랑받은 기억밖에 없는데, 그건 내가 특별히 귀염성 있거나 출중하게 태어나서가 아니라 밑에 동생이 없고 생길 가망도 없는데다가 오빠와 십 년이라는 나이 차이 사이에는 삼 남매..
"잘못된 순서입니다. 이유를 알아야 선택의 방향이 결정되는 겁니다." "아뇨, 제 순서는 달라요. 이유를 말했는데도 선택도 받지 못하면 둘 다 잃게 되는 거니까요." "패를 먼저 보이지 않겠다는 거군요." 엉성하게 얹어둔 귤 하나가 떨어져서 아래로 굴러갔다. 송미는 잠깐 쉬면서 그 귤을 계속 보았다. 귤은 빠른 속도로 굴러갔고 송미도 그 귤을 따라 굴러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 같아선 만신창이가 되었을 그 귤을 찾아오고 싶었지만 다시 돌아갈 길이 까마득했다. 외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송미는 그 언덕과 귤을 떠올렸다. + 할머니의 죽음을 서서히 학습해가면서, 계절이 바뀌면서 내가 막연히 느낀 건 이제는 그 누구의 집에서도 화사하게 베란다에 가득 꽃이 피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이..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1913년, 그 이야기. 1913년 세기의 여름 양장본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19일 출간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54622608&orderClick=LAG&Kc= + 늘 읽고 싶었지만 선뜻 손이 안가던 것들.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에 대해서 줄곧 집중해왔는데 이제는 이유를 알고 싶고 대처하고 싶다. 누가 이런 책을 읽지 하던 책들에 손이 가기 시작했다. 알고 싶고 앎으로부터 상대와 현상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납득하고 싶다. 나와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
오랜만에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이 순간에 왜 내가 내 삶을 불신해야 할까? 차분하게, 똑바로 생각해보면 앞으로 훨씬 더 견실한 삶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소멸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할까? 그러나 매일 밤 별 아래에서 해변을 걸을 때마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는 별난 사람도 아니었고, 일그러진 사람도 아니었고, 어떤 식으로든 극단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 나이에, 죽는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걸까? -에브리맨, 필립 로스. 문학동네.
"요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혹시 이런 질문을 하고 다니는 것도 법으로 금지된 건 아니겠죠?" "어떤 상황 말입니까?" "독일에서 벌어지는 일들, 히틀러와 유대인 문제 말입니다." "내 힘으론 어떨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을 안 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말을 칭찬으로 들으셨군요. 그래서 '감사하다'고 말한 거죠?" "칭찬은 아니지만, 욕도 아니잖습니까? 사람들은 국적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난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온갖 나치당원들의 이름을 줄줄 말했다. 모두 헬가와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헬가와 내가 나치에 열광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증오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들은 우리의 연극을 사랑하는 열렬한 관객이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중요 인사였다. 그들도 그냥 사람이었..
쉬는 시간에는 자거나 책을 봤다. 나를 두고 변했다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책은 성장소설이나 자서전을 주로 읽었다.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에 동감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자극을 받고 싶었다. 그들에게 세상은 너무 쉽다. 반 성적을 한두 등수 올리기 위해 코피를 쏟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천재였거나 너무 쉽게 천재가 되는 사람들이었다. 실화라고 해도 현실감이 없었다. -상큼하진 않지만, 김학찬. 문학동네. + 다 읽었다. 일찍 자려고했는데 그냥 밖에서 놀다오는 게 더 빨리자는 방법일 듯 하다. 중학교 때는 공부해도 안해도 고만고만했다. 특출나게 공부 열심히 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안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모 아들, 삼촌 딸과 함께 동갑내기 소띠 삼 형제 중에 가운데 였는데 스트..
사실 나는 어딜 향해 이야기하는지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도무지 모르겠어요 포도는 너무 예뻐요 농약이 묻어 있을까봐 흐르는 물에 오래 씻은 컴컴한 보랏빛 포도 포도는 신사임당을 떠올리게 해요 치마폭에 그려진 포도 어릴 적 삽화에서 보았거든요 신사임당을 쓰자마자 갑자기 불안해져요 포도 물은 잘 안 빠지잖아요 포도를 먹다가 옷에 흘리면 안 되는데 물이 안 빠지면 안 되는데 그런 걱정 없이 포도를 먹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내일 일어날 걱정도 없이 술을 먹는다면 좋겠어요 술은 아무 죄도 없고 그렇다면 도무지 어디 가서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 과거도 미래도 아무런 죄가 없는걸요 - 12월주의자들, 김이강.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문학동네. - 그런 단어의 흐름 속에 생각이 옮겨간 자리가 모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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