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한다. 워낙 운동량이 없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이 시간에 잠들지 못하면 당연하게도 좋은 생각보단 걱정이 더 많다. 그래서 매일 걱정하다가 해결책도 없이 잠이 들고 늦잠을 자고 늦은 하루를 시작한다. 다행스럽게도 하루 중 대부분은 늦은 밤의 걱정은 잊고 즐겁게 지낸다. 하지만 다시 밤이 되면 신랑은 먼저 잠들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내 인생의 막연함과 나의 능력없음, 엄마에 대한 부채감과 건강에 대한 걱정, 동생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아빠에 대한 고마움과 짜증 같은 걸 느낀다. 오늘은 더불어서 시어머니에 대한 정의할 수 없는 감정도 함께다. 이제 하루만 더 쉬면 연휴도 끝나고 결혼한지 꼭 2년이 되는 날이다. 아주 대충이지만 이 과정이 끝나면 그 다음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하고 생..
지난 주까지만 해도 캥거루도 보러 다녀오고 시티도 구경하고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데이오프를 보냈는데 이번 주는 아마도 피로가 쌓였었는지 늦잠, 동네, 늦잠, 옆동네, 늦잠, 집. 이렇게 마무리했다. 일요일엔 흐리고 비가 왔다. 빗소리를 들으며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나 신랑이 차려주는 점심을 먹고 무척 마음에 드는 수영복을 아주 우연히 싸게 사서 기분이 좋았다. 느즈막히 한인성당에 다녀왔다. 신랑은 요즘 요리에 부쩍 재미를 붙이고 있다. 손에 습진이 생겨서인지 집안일도 도맡아 해주니 참 고맙다. 늘 여유롭게 지내고 있지만 쉬는 날에 무언가 하지 않고 지내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미사였고, 오랜만에 또 한국말로 말씀을 들으니 좋았다. 공교롭게도 부활과 승천 대축일에 미사를 가서 그런지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누구든, 한 사람이 세상에 와육십년을 살아냈다는 것은 어쩧든 장한, 감사한 일입니다.누구는, 제법 다른 세상살이가다르게 있겠지요만 그래도 거기까지 살아냈다는 것은누구도, 함부로 어지럽힐 수 없는엄숙한 뜻이 베어있어하느님도 그윽히 내려 보십니다.어떤 수저로끼니를 이어도 그것들 모두결국은 한 끼니, 한 끼니.고리진 끼니들의 사슬에서잘난 고리, 못난 고리는 없는 것.이어지는 고리로 완성되는 사슬.다만 거기에서 평화가 있을 뿐, 입니다. 라고 믿습니다어떤 시인의 젊은 아내는 먼저 죽어접시꽃으로 만든 날개를 받았는데어떤 시인의 늙은 아내는 살아가난한 한 끼를 즐겨 받습니다. - 아내의 회갑날 먹는 짬뽕 오늘은 엄마의 생일, 정확히는 육십번 째 생일이다. 내가 삼십이 넘고 결혼을 하고 나서 첫 해가 엄마, 아빠가 ..
matabungkay 마따붕까이로 읽기가 싫은 건..붕이라는 글씨가 주는 촌스러움 같은 거. 아침 8시에 렌트카를 타고 출발했다. 늦게 오는 기사분도 많다던데 30분 가까이 일찍 오셨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았으므로 시간을 지켜서 출발. 렌트카 자체는 편안하지만 첫번째 업체는 전날 돌연 연락을 받지 않아서 다른 렌트카를 알아봐야했다. 두번째 렌트카는 시작은 좋았으나 기사님이 오늘 운전 처음하시는 분인 것 같았다. 길도 모르시고 네비게이션도 없고 운전 센스도 없으시고 영어도 못하셨다. 3시간이면 도착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4시간, 돌아올 때도 잠깐 잠든 사이에 정 반대 방향으로 가서 1시간이나 지연되었다. 그래도 안전운전 해주셨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T_T * 필리핀 렌터카 시에는 네비게이션이 있는지! 영어는 ..
오늘은 11월의 첫 날. 새로운 달이 오고 간다는 실감은 전혀 없었지만 집에 돌아와 일기를 쓰려고 보니 새로운 달이다. 버스를 타고 명동을 지나는데 어느 새 백화점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다. 2016년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보게 될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11월의 실업급여는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여름 나라에 갈거라 가을, 겨울이 없는 올해를 보낼 거 같아서 서운했는데 일정도 밀리고 날씨도 빠르게 추워졌다. 덕분에 여름이 그립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 더욱 긍정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춥기도 춥고 우리 동생도 보고 싶어서 오늘은 신랑과 친정에 다녀왔다. 엄마랑 동생이 산책 중에 데리러 나와주어서 편하게 갔고 아빠는 작업실에 가서 늦게 오는 바람에 우리 넷이 동네에 맛있는 족발을 먹었다. 입..
http://web.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570646&path=201505 묵주는 나에게 움직이는 성당이다. 언제 어디를 가든 몸에 묵주를 지니고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어려움도 묵주를 손안에 쥐면 두려움도 외로움도 없다. 세상사 여러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고립되어 있을 때도 묵주와 함께라면 진실을 지켜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 몸에 묵주, 내 마음에 묵주. 그러니 묵주는 나에게 거룩한 십자고상의 살아 있음이다. 아슬아슬한 세상사를 굳건하게 견디며 묵묵히 살아갈 수 있음도 나에게는 묵주의 힘이다. 모든 것이 차단된 곳에 갇힌 적이 있었다. 오직 진실 하나에 의지하고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을 때다. 규정에 ..
팍팍하고 아슬한 세상 그래서 사무치게 외로운 날온천같은 사람과 단 둘이 허리띠 풀고 앉아긴칼 휘드르며 적진을 휘젓고 맘껏 승리의 축배에 취해모처럼 긴잠 흠뻑 자고 일어난 휴일남쪽 창으로 드러난 그 사람의 훈김과 함께 누워십자고상을 올려 본다 좋으다 -그리운 날, 김춘성. +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 엄마에 대한 글. 누군가를 오래도록 보고 오래도록 생각하고 오래도록 판단하고 오래도록 오해하는 것. 그것이 사랑일까. 아빠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다는 걸 확신할 수 있다.
클레어 식의 사고방식이 나쁘고 필의 사고방식이 더 좋은 건 아니지만 둘이 다르고 그런 둘이 아이들을 키우기 떄문에 균형감을 가지고 지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은 필과 같은 유형이셨다. 클레어 같은 방식으로, 아이가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키우는 부모도 많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부모인지 잘 모르겠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나 자신이 아이를 키울 때는 달라질까? 조금 더 이해하고 그 사람이 행복하길 응원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해보면 나는 꽤 많이 참는 사람이다. 그래서 언젠가 기도할 때,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종류의 불행이나 마음을 너무나 참지 않는 아이가 되길 바랐다. 호진이는 참을 성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줄 아..
습설 사람, 질리게 봐온 사람들이다. 검소함과 추레함의 차이, 실제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의 차이, 속 빈 자들의 끝 간 데 없는 기고만장함. 이제껏 살아왔을,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어떤 삶을 몇가지 행동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뽀득뽀득한 삶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실은 그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도 안다. 볼을 벼리는 추위를 참고, 얼어버린 나뭇가지가 된 손가락으로 찍었을 설원의 한 컷을, 난방 잘된 전시관에서 편히 보는 것. 보는 사람. 참 좋군. 폭염 속에서 우연히 본 어느 농가 처마에 달린 고드름 사진. 저긴 참 좋군. 구석에 수년간 작동하지 않았을 혹은 못했을 녹슨 경운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 그렇지. 알고 있었다. 신념에 의한 자발적 가난이 아니라 노력해도 벗어나기 힘든 비자발적 가..
471 타고 명동가서 빨간버스 타고 집으로 가는 먼 길. 참 오래도 다닌 길. 여러 번 집이 바뀌는 동안, 다양한 노선의 버스를 타고 참 많이도 오갔다. 어릴 때는 모르는 게 많아서 다행이었던 것 같다. 천진난만하다고 할까, 삶의 이면을 모른 체 우울하거나 꿉꿉하거나 움추러들지 않고 잘 마른 빨래처럼 건강하고 빳빳하게 키워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왜 몰랐을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 딱 하루, 할머니가 입원한지 벌써 35일째 인데 딱 하루 밤을 할머니하고 엄마하고 같이 잤다. 처음이라 할머니 숨소리, 할머니 코소리, 신음소리, 할머니 몸에 붙어있는 수많은 기구들의 소리, 침대 에어매트 소리 그 온갖 소리들에 둔한 나지만 푹 잠들 수가 없었다. 소리가 없으면 없는대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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