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알 수 없는 글씨와 핑크 같은 색에 둘러쌓여 있는 것! 나에게 가장 낯설고 신기했던 건 영어도, 일본어도 심지어 한자도 아니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글씨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영어도 독어도 프랑스어도 유럽만 가도 수많은 나라 말들이 그러하겠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말의 모양이 아닌 것이 내 주변을 감싸고 있다는 것. 그게 가장 압도적인 낯설음이었다. 도무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이미 친절하게 준비되어있는 도시와 친절한 태국인들 덕분에 여행이 불편한 적은 없었다. 트레인이 다녀서, 길을 걸어다닐 수 있어서, 밤에도 비교적 안전해서, 덥다고 하더니 그렇게 많이 덥지 않아서, 수많은 싸고 맛있는 현지 음식이 있어서, 힙한 카페도 많아서, 생각보다 예쁜 사람도 많고, 우리가 선택한 ..
여름은 덥긴해도 역시 땀이 주룩주룩 흐를 정도로 더우니까 좋다. 생각해보면 여름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땀을 격렬하고 자연스럽게 흘릴 일이 좀처럼 없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초여름부터 한여름까지는 나무가 초록초록해서 나는 여름이 좋다. 그런 생명력을 느끼면서 무기력해지는 일은 최악의 경우긴하지만, 연애도 여름이 되면 조금은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는 거 같고. 내 인생에 가장 짙은 선을 그어진 한 해가 온통 여름인 것만 같았던 기억 때문에 나는 여름이 좋다. 하지만 최근에 점점 여름이 별로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나는 여름 옷이 잘 안어울린다. 목도리하면 예뻐지고 니트 입을 때가 티 하나 입을 때보다 내가 봤을 때 더 예쁘다. 여름엔 얼굴도 벌개지고 물광한 거 처럼 번들거리고 햇빛 알러지나 온도가 연..
-경주, 계림에서 동궁과 월지로 넘어가는 길. 20140717. + 언제나 좋아하는 핑크색 하늘. 정말 오랜만에 눈앞을 가리는 것 없이 너른 곳을 보고 있을 수 있었다. 비가 오고 흐리다 해가 질 무렵에 맑아지려고 했나보다. 해가 구름 뒤로 넘어가는 내내 그 붉은 빛이 온 사방을 덮었다. 점점 더 넓어져서 온 하늘이 핑크색이 되었다. 그리고 눈앞에는 하늘과 나무 밖에는 없었다. 아주 멀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작은 집들. 이걸 본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했던 거 같다. 커다란 행복의 돔 안에 들어간 것 같았던 순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이어져있는 듯한 기분을 받으면 미묘하게 힘이 난다. 헬로우 블랙잭 같은 종류의 만화라고 할까 아무튼 3권 이상 이어지는 만화책이나 방영 중인 드라마는 잘 챙겨보지 않는 편이니까. 하지만 회사 일이고 주중엔 시작도 못하다 잠들기 전에 문득 생각이 났다. 한참 잊혀진 게시물 속에서 이토록 유용한 번역용 툴을 열어보고 훌륭하다고 감탄하고 1권에 돌입. 읽히는 그대로 직역해서 검색해보니 드라마가 있었구나. 드라마에는 무려 츠마부키 사토시가 나왔기에 원작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 갑자기 신뢰하게 되었다. 원작이니까 라는 핑계로 오랜만에 츠마부키 사토시 얼굴 한 번 볼까 싶어서 검색하다 영 파일이 안나와서 2000년대 초반의 일본 드라마가 보고 싶다고 생각. 생각난 김에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순화동. 동아일보 앞, 플레이져플레이스 옆. 여기까지는 와보는 길이고 이 고가는 이대갈때 늘 오르던 길이고 옆으로 서대문은 또 애들 만난다고 걸은 적이 있는 길이었는데 여기에 이런 풍경이 있었을 줄이야. 약현성당에서 나와 비개인 길을 걷다보니 기차길이 나왔다. 멈춤 표시에 가만히 서있는데 기차까지 날쌔게 지나친다. 와, 이 우주적 풍경은 뭐람. 새로운 길을 걸을 때 내가 모르던 길을 발견했을 때 거기가 마음에 들 때 두근거린다. 그 풍경이 너무 좋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왔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을 때도, 몸에 감싸이는 바람이 한결 차가워짐을 느낄 때도 참 좋았다. '그래, 이렇게 비가 와야 여름이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야 가을도 오지. 하지만 아직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못한 일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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