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김애란 - 바깥은 여름, 김애란. 문학동네.
물욕이 없지는 않지만 그다지 많은 편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지나고 보면 언제나 쓸데없이 많은 걸 끌어안고 살고 있다는 생각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물건을 사곤 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신랑이 패드를 산다길래 나도 책 열심히 읽고 공부할지도 모르니까 하고 덥썩 샀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겨울이 온 줄 알고 한국에서 부랴부랴 온수매트랑 난방텐트도 샀다. 옷의 가짓수가 없어서 외출복을 잠옷으로도 입었더니 빨래를 너무 자주해야하는데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나 들어오니까 볕이 좋을 때 빨래를 말릴 수가 없어서 곤란했다. 그래서 나 잠옷이요 하는 겨울 잠옷도 샀다. 바다에 가서 물놀이 하는 사람도 많지만 누워서 책 읽고 쉬는 사람도 많아서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짐이 ..
교재를 사야한다고 하길래 수업 시간에 쓰는 건가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필요한 책을 복사해서 프린트로 가져와서 나눠주기 때문에. 워크샵 형식으로 한 책을 꾸준히 나가는 건 아니고 그때 그떄. 그래서 종이가 너덜너덜 해지고 쌓여가는 기분으로 공부하는 맛은 없지만 진도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선생님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배울 수 있어서 사실 상 머리에 더 남는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재가 있는데, 피어슨. 너 랩탑 있니 하고 물어보더니 인터넷으로 혼자 수업하는 거라고 했다. 드디어? 어쩌다보니 대형 출판사의 인터넷 LMS를 체험하게 되었구나. CD 대신 MP3로 받을 수 있거나 같은 시리얼 넘버로 듣기만이라도 가능한 앱이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은 들지만 뭐, 공부하고자 하는..
학사 한 사람이 책을 보다가 반도 못 보고는 땅에 던지며 말했다. "책만 덮으면 바로 잊어버리는데, 본들 무슨 소용인가?" 현곡 조위한이 말했다. "사람이 밥을 먹어도 뱃속에 계속 머물려 둘 수는 없다네. 하지만 정채로운 기운은 또한 능히 신체를 윤택하게 하지 않는가. 책을 읽어 비록 잊는다 해도 절로 진보하는 보람이 있을 것일세." 말을 잘 했다고 할 만하다. -이익, 중 / 오직 독서뿐, 정민. 김영사. + 책을 읽는 것만으로 눈 앞에 있던 답답한 일의 해결책이 보이거나, 갑자기 나의 능력치가 향상 되어서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되려 이렇게 읽어도,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되는 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책과 나의 삶의 공통점이나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
남들의 추천보다는 나에게 와닿는, 나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책들을 어느덧 첫 느낌만으로 잘 찾아내게 되었다. 읽다가 재미없다 싶으면 가차 없이 새 책을 집어들어도 되었다. 의리니 뭐니 불평하는 일이 없으니 사람보다 얼마나 공정하고 정직한가. 완독을 해야 인내심 있는 인간이 되는 양, 억지로 쓴 약 먹듯 읽을 필요가 없었다. 책은 내게 무리하도록 요구하질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애초에 그들이 책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짧든 길든 심리적으로 외톨이였던 시절이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 나라는 여자, 임경선. 마음산책.
그렇다. 글을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어떤 능력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김연수 시인 말대로 나는 글을 쓸 때 얼마든지 견딜 수 있으며 오에 겐자부로의 말처럼 책을 읽는 것이 다른 이들에 비해 괴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읽는 일도 쓰는 일도 다루는 일도 다른 어떤 일에 비해 괴롭지 않다. 할 수 있다. 엉덩이 힘만은 꽤 봐줄만 하고 명석하진 않아도 예민하다. 디테일이 생명. 사내전화번호부에 틀린 이름, 사사에 틀린 책제목, 맞춤법, 출판사 분들이 가져온 새 책을 훑어보다가도 틀린 글씨가 보인다. 이것은 우연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늘 거기에 레이더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재미없는 걸 견딜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구매는 견딜 수 없지만 번역이나 글을 다루는 일은 견딜 수..
다양한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은 친구가 다니는 학교에 내가 다니지 않으면 부끄럽다든지, 친구가 대기업에 들어갔으니까 나도 들어가야한다는 생각을 버리자는 말입니다. 21세기에는 획일적인 사고로는 살 수 없고 행복할 수도 없어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무리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일에 자신감을 갖는 편이 훨씬 중요하고 행복하죠. - 후쿠하라 요시하루 처음부터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블라) 어느 쪽이 밝은 미래를 향하고 있는지, 장래에 어느 쪽을 탁트인 심성으로 인식해야 하는가는 명확합니다. (블라) 생각해보고 올바르다고 판단되면 도전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상품은 백인에게만 맞는다" 던가, "이 스웨터는 흑인만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요. 제조업은 어느 누구라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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