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설 사람, 질리게 봐온 사람들이다. 검소함과 추레함의 차이, 실제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의 차이, 속 빈 자들의 끝 간 데 없는 기고만장함. 이제껏 살아왔을,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어떤 삶을 몇가지 행동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뽀득뽀득한 삶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실은 그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도 안다. 볼을 벼리는 추위를 참고, 얼어버린 나뭇가지가 된 손가락으로 찍었을 설원의 한 컷을, 난방 잘된 전시관에서 편히 보는 것. 보는 사람. 참 좋군. 폭염 속에서 우연히 본 어느 농가 처마에 달린 고드름 사진. 저긴 참 좋군. 구석에 수년간 작동하지 않았을 혹은 못했을 녹슨 경운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 그렇지. 알고 있었다. 신념에 의한 자발적 가난이 아니라 노력해도 벗어나기 힘든 비자발적 가..
삼촌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든 주식이든 사연이 많은 건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라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하기야 사연으로 따지면 나처럼 사연 많은 아이도 없을 거다. "야가 너무 순진타 아이가. 니 나이 때는 춤도 추고 깔나게 놀기도 하고 연애도 쪼매 하고 그러는 기 재미 아이가. 너무 순진해도 몬쓴다." 사실 나는 순진한 아이들은 싫다. 최소한 껌이라도 씹고 다리라도 떨어야 상대하고 싶다. 나는 모르는 척 홍야홍야 그냥 잠이 들었다. 언니가 순순히 나와 준다고 하니 울컥 고마움이 일었다. 이런 사소함에 너덜너덜한 감정이 생긴다는 것도 좀 웃긴다. 역시 가족이라는 건, 한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와 위기 상황일 때 서로를 돌아볼 수밖에 없나 보다. 나를 이 꼴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했겠지...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중략)집에 들어와 함께 살기 전까지 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였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두리만을 떠돌며 낭떠러지를 걷듯 살아온 천애의 삶, 아무리 똥줄 타게 뛰어다녀봤자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무능과 무지, 숱한 수모와 상처, 불명예와 오명의 역사. 도대체 내가 어떻게 가족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 헤밍웨이의 전집을 처음 읽기 시작한 이후, 나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대부분 내 의지..
그날 내 마음은 너무나 가난했어. 만약 가난하다면, 평생 동안 계속 가난하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생각할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어. 돈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 같았어. 단지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거야. 그러자 막연히 두려워했던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어. 물론 알아. 정말 가난한 사람에 비하면 엄살에 불과하지. 그래 내 가난은 아직 실재가 아니야. 내가 가난하다는 게 믿어지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우울한 정도지. 가난이란 우울조차도 복잡하거나 모호하지 않고 명쾌해. 돈만 있으면 해결되니까. - 환과 멸, 밤의 나선형 계단, 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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