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 것도 아니지만 아니 기다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곤해진다. 양말을 신고 잠을 자보아야겠다. 너무 졸리워서 겨우 누웠는데 뭔가를 읽고 싶어 눈을 떴다가 잠이 달아나버렸다. 잠이 깨고 나니 보고 싶어졌는데 그 이후에도 시간은 무심하게 갔다.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하루를 지나온 숲은 서늘한 입김으로 어제보다 조금 더 늙어늙어서 기쁜 시간으로시간의 끝으로 달려간 어느 날, 슬프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으로 -저녁 숲의 고백, 김선재. 얼룩의 탄생. + 그러고보니 올해는, 뭐 매해 읽었던 건 아니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글을 한 줄도 읽지 않았구나.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그의 글을 읽어야지.
나의 수많은 악덕 중에서 가장 몹쓸 악덕은 나태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 나태는 어지간한 수준이다. 적어도 나태에 관해서 만큼은 나는 진짜다. 설마하니 그렇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이지 스스로도 한심하다. 이것이 나의 최대 결함이다. 분명 부끄러운 결점이다. 나는 사실 부끄럽다. 고뇌고 뭐고 없다. 왜 안 쓰나? 사실은 몸의 상태가 조금 안 좋아서,라고 궁지에 몰려서 눈을 내리깔고 애처롭게 고백하곤 하지만, 담배를 하루에 오십 개비 이상 태우고, 술은 마셨다 하면 보통 한 되 이상 쉽게 마시며, 그리고 나서 오차즈케를 세 공기나 쑤셔 넣는 그런 병자가 어디 있어. 언제까지고 이래서는 나는 도저히 가망 없는 인간이다. 그렇게 단정 짓는 것은 나로서도 괴롭지만, 더는 자신을 응석받이로 만..
그만두자. 자신을 비웃는 건 치사한 짓이다. 그것은 꺾인 자존심에서 온 것 같다. 실제로 나도 다른 사람한테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선 제일 먼저 내 몸에 못을 박는다. 이거야말로 비겁하다.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아아, 겸손하게. - 만년, 어릿광대의 꽃. 다자이 오사무. + 청년 다자이는 자살을 앞두고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자신의 첫 창작집에 '만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자신이 멸망해가는 백성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자신의 일생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작품들을 썼다고 한다.
거짓말 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패배자다. 여자는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데 미소 하나면 충분하다. 킹코는 학교에서 바로 내 옆에 앉은 짝이다. 그렇지만 난 킹코와 별로 친하게 지내는 것도 아닌데 킹코는 누구에게나 내가 자기하고 제일 친한 사이라고 말한다. 귀여운 아이다. 로코코라는 말을 얼마 전에 사전을 뒤져 조사해 봤더니 화려한 것일 뿐 공소한 장식양식이라고 쓰여 있어 나는 웃어버렸다. 명답이다. 아름다운 것에 내용 따위가 있다면 그게 말이 될 것인가. 순수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무의미하며 도덕과는 거리가 멀어 나는 로코코가 좋다. 내일도 또 같은 날이 오게 된다. 행복은 평생 오지 않는 것이다. 그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일은 꼭 행복이 찾아오리라고 믿고 자는 게..
여자는 끌어당기고 뿌리칩니다. 아니면 또 여자는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나를 멸시하고 매정하게 대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을 때는 꼭 부둥켜안고 여자는 죽은 둣이 깊게 잠이 듭니다. 여자는 잠을 자려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괜찮아요, 돈 같은거." 여자는 기뻐하며 일어났습니다. 심부름을 시키는 건 결코 여자에게 실망을 주는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자는 남자에게 부탁을 받으면 기뻐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일본 곡마단이 검둥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마을은 술렁거렸다.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했다. 새빨간 뿔이 나 있다. 온몸에 꽃 모양의 얼룩이 있다. 소년은 전혀 그것을 믿지 않았다. 소년은 생각했다. 마을사람들도 진심으로 믿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닐 거라고. 평소부터 꿈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이런 때 제멋대로 된 전설을 만들어내 믿는 척하며 취해 있는 게 틀림없다고. 소년은 마을사람들의 그런 안이한 거짓말을 들을 때마다 이를 갈고 귀를 막으며 뛰어서 그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소년은 마을사람들의 소문을 얼간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왜 이 사람들은 좀 더 중요한 걸 이야기하지 않을까? - 만년, 역행. 다자이 오사무. 만년 지은이 다자이 오사무 상세보기 다자이 오사무 (津島修治, Tsuz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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