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우린 이제 마지막 남녀가 아니라 수많은 남자 여자 중의 하나였다. 한 사람에게 몰두하는 일이 얼마나 집중력을 요하는 중노동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신경 써야 할 잡무가 많은데도 그게 오히려 휴식이 되었다. 연애질에서 비켜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그 남자에게 싫증이 난 건 아니었다. 연애의 권태기가 온 것 하고도 달랐다. 만일 그 남자를 못 만났더라면 그 시절을 어떻게 넘겼을까. 그 살벌했던 날, 포성이 지척에서 들리는 최전방 도시, 시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도시, 버림받은 사람만이 지키던 헐벗은 도시를 그 남자는 풍선에 띄우듯이 가볍고 어질어질하게 들어올렸다. 황홀한 현기증이었다. 이 도시 골목골목에 고인 어둠, 포장마차의 연탄가스, 도처에 지천으로 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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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1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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