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아직 침대인 나는 그리 부지런해지지 않았다. 인생이란 길지 않아 한 번 간 곳에 두번 갈 일이 많지 않다하다 하나라도 제대로 보자. 포기와 선택은 비단 여행만의 문제는 아닌듯하다. 여러 곳을 밟고 여러 개의 건물을 보면 변수야 늘겠지만 반드시 내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나를 봐도 꿀렁꿀렁 마음 안의 무언가의 감흥, 영감 그런걸 갖고 싶다. 박물관 벽앞에서 키스하던 연인, 2층버스에 자리가 없어 엄마와 아들이 한자리에 껴 앉는 것, 혼자 온 까만머리 외국인 내게 친절을 베풀어준 크리스티앙과 안네, 그의 어머니 맛.
11월은 역시 겨울이 시작되는 마지막 가을, 무척이나 쨍한 날씨가 참 좋다. 그 공기의 팽팽함과 굴절없는 태양. -베를린
아무리 해도 아직은 그 인식과 경험의 틀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처음이라 그랬던 게 아니라 몇 곳을 더 경험하고 돌이켜봐도 일본이라는 공간이 나에게는 잘 맞았던 거 같다. 유럽에 대한 로망은 '옷 잘 입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오랜 역사가 삶에는 어떻게 구현될까, 베어있는 자유로움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였지 그 유구한 역사와 건물과 웅장함과 부러움 그런게 아니었다. 무엇 하나가 특별나서가 아니라 틀 안에서 성실하게 사는 일상과 햇빛이 드는 창이 없는 베란다와 제 무게만큼만 지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삶. 오랜 역사나 건물도 좋지만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존재해온, 나를 안심시키는 몇 개의 이름들과 손에 닿는 거리에 있는 세간과 이동거리. 정규 교육과 비교적 평범한 일들, 낮과 밤이 다른 도시의 삶.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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