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을 참 여러 번 옮겼는데 그때마다 기억에 남는 공간, 풍경이 있다. 정릉의 기숙사에서는 초록이 잘 보이는 방충망이 없는 직사각형 창문이 좋았다. 빨간 벽돌 집이었는데 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에 이층 침대. 내가 2층을 쓰고 1층은 지금은 만나지 않게 되버린 지연이. 누으면 천장이 제법 가까웠던 기억. 방문에서 정면에는 책상과 창문, 그 왼편 뒤로는 붙박이 같은 빨간 갈색의 옷장. 이름을 잊어버린 수녀님. 한 번은 수녀님 방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마디는 기억에 아주 깊게 남아있다. 너무 많은 눈물은 눈앞을 흐리게 한다고 하셨다. 많이 울고 털어내고 그러나 너무 자주 많이 울면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요지의 말씀이셨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울 수 있는 만큼 울..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중략)집에 들어와 함께 살기 전까지 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였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두리만을 떠돌며 낭떠러지를 걷듯 살아온 천애의 삶, 아무리 똥줄 타게 뛰어다녀봤자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무능과 무지, 숱한 수모와 상처, 불명예와 오명의 역사. 도대체 내가 어떻게 가족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 헤밍웨이의 전집을 처음 읽기 시작한 이후, 나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것은 대부분 내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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