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것도 권태이거늘 이기는 것이 어찌 권태 아닐 수 있으랴? 열 번 두어서 열 번 내리 이기는 장난이란 열 번 지는 이상으로 싱거운 장난이다. 나는 참 싱거워서 견딜 수 없다. (중략) 일부러 져 준다는 것조차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왜 저 최 서방의 조카처럼 아주 영영 방심 상태가 되어 버릴 수가 없나? 이 질식할 것 같은 권태 속에서도 사세한 승부에 구속을 받나? 아주 바보가 되는 수는 없나? 내게 남아 있는 이 치사스러운 인간 이욕이 다시없이 밉다. 나는 이 마지막 것을 면해야 한다. 권태를 인식하는 신경 마저 버리고 완전히 허탈해 버려야 한다. - 권태, 이상.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화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봉과 미망인ㅡ세상의 하고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개개 '미망인'이라는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독이 되오? 굿바이. (미망인/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듯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는 말. 남편을 따라 죽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약하자면 그 정도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여자의 행복이 아닌가. 그런 남성을 만나지 못하는 것도, 삶이 그렇게 녹녹하지 않은 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정신-육체적으로 헤어지는..
「하와이라……」 아버지가 내 앞에서 처음으로 '하와이'란 말을꺼낸 것은 내가 열네 살 때 설날이었다. - GO, 카네시로카즈키. 2008년 1학기라고 생각된다. 현대소설의 연구? 이해? 이런 수업을 들으면서 한 학기 내내 이 소설 하나만을 읽었다. 정말로 질릴 정도로 읽었는데도 실수 했고 선생님은 쌍욕이 나올 정도로 과제를 내주고 질문했다. 그렇게까지 치달았지만 소설, 이라는 것을 내버릴 수 없었다. 질리기는 커녕 질릴 정도로 읽었는데 역시 좋아한다, 고 깨달았다. (내 인생을 둘러싼 세 사람의 남자처럼) 고생을 하더라도 많이 틀리고 실수하더라도 이거라면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첫 문장을 떠 올릴 수 있었다. 첫 문장을 떠올리니까 그동안 고생하며 읽었던 구석구석의 내용이 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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