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남쪽으로 불다 북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있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
막으면 막아지고 닫으면 닫히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가벼워질까. 그 모든 것들이 혜인에게 위안을 줬다.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여자로부터 배운 셈이라고 혜인은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법이라고. 1호선 열차를 타고 통학을 하던 때가 기억났다. 열차가 한강을 지날 때면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떠올랐고, 그리웠다. 그 마음과 애써 싸웠던 적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혜인는 그리운 감정이 들이칠 때면 그냥 그것이 밀려오도록 내버려뒀다. 그립구나. 내가 여자를 그리워하는두나,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숙모는 숙모지. 혜인은 그렇게 말하고 여자 쪽으로 다가갔다. 내 숙모지. 여자의 곁에 붙어 앉은 혜인의 머리를 여..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쯤이었을 거야. 강원도 살 때, 직업군인들 가족끼리 모일 일이 많았었거든. 계급이 높은 남자들은 거실 소파에 앉고, 낮은 사람은 바닥이 앉고, 여자들은 계급이 높은 남자의 부인이 식탁 의자에 앉고, 낮은 남자의 부인이 싱크대 앞에 서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때 알게 된 어떤 사람이 있었어. 나이는 이십대 중반 정도였는데 항상 난처해보였어. 여자들의 대화에 끼어들려고 노력하는데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남편도 항상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거야. - 내게 무해한 사람, 모래로 지은 집. 최은영. 문학동네.
이 가 출판된 후에,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그 작품이 소설로 통용된다면, 누구나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적어도, 그런 말을 한 사람 어느 누구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아마 써야 할 필연성이 없었던 것이리라. 필연성이 없으면 ㅡ 가령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해도 ㅡ 아무도 소설 따위는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썼다. 그것은 역시 내 안에 그럴만한 필연성이 존재했다는 뜻이리라.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열림원. 김난주 옮김.
곡을 만들다 보면 가끔 도중에 막히는 일이 있다. 그런 떄는 대부분 입구를 잘못 찾은 것이다. 때로는 방향을 잘못 잡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머리를 전환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또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고집을 쉽게 버릴 수 없다. 시간을 허비하고,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자기 자신을 믿으며 만든 작품, 그런 작품을 어찌 쉽게 버릴 수 있겠는가! 마음이 많이 담긴 작품일수록 도저히 버리지 못하고 미련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 뒤틀린 작품은 영원히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욱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변신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당신은 벽에 부딪혀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잊고 과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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