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자식의 자율성과 창의성 배양을 위해 일부러 그랬다기보다 그저 자신들의 삶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런 환경에서 성장하다 보니 나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어른으로 컸고 나 또한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다. 또한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잃는 것이 반드시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는 태도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가 나 자신과 기쁘게 맺은 약속들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나 '일과 사생활의 균형'이라고 좋게 표현할 수도 있다. 하루 대부분의 생산적인 시간을 내가 직업으로 하는 일에 투입하는데 내 마음과 열정이 그곳에 없어 빈껍데기처럼 일한다면, 그만큼 충족되지 못한 마음과 열정을 다른 곳에서 어떻게든 해소시켜줘야 한다. 그러려면 사생활이 정말 재미있어야만 할 것 같..
나는 그저 그런 학생으로 지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데 온 힘을 기울였고, 그저 그런 청년으로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하려고 노력했다. 직업을 찾기 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마흔 이전에는 절대로 절망하면 안 되고,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체념해서도 안 되는 거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낭비해도 괜찮다는 신념이 필요하다. 낭비를 낭비로 느낀다면 곤란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렸을 때부터 낭비를 생활화해왔다. 시간을 절약한다거나(아니, 그 많은 시간을 왜?) 잠을 줄인다거나(아니, 푹 자도 시간이 남던데) 하는 일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선택하기 위해 결정하는 방식은 언제나 똑같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버린 것은 돌..
그걸 쳐다본다는 건 청승을 떠는 것처럼 보일 테고 내가 청승을 떨면 식구들이 나를 불쌍해할 것 같아 싫었다. 나의 최초의 자의식이었다. 내 눈엔 영원히 펄펄 날아다닐 것처럼 보이던 할아버지가 동아줄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안간힘을 쓰는 걸 본다는 것은 환멸과 비애의 극치였다. 불쌍한 할아버지, 그때 할아버지에게 위로가 된 건 그들의 신바람이나 덕담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끼쳐오는 타관의 냄새가 아니었을까. 내가 할아버지 두루마기 자락에서 대처의 냄새를 즐겼듯이. 돌이켜보면 기억의 가장 밑바닥, 취학 전 시골에서 보낸 유년기는 온통 칭찬받고 사랑받은 기억밖에 없는데, 그건 내가 특별히 귀염성 있거나 출중하게 태어나서가 아니라 밑에 동생이 없고 생길 가망도 없는데다가 오빠와 십 년이라는 나이 차이 사이에는 삼 남매..
"우리 모두는 온갖 것들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 이윽고 에리가 입을 열었다. "하나의 일은 다른 여러 가지 일들과 연결되어 있어. 하나를 정리하려 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것들이 따라와. 그렇게 간단하게는 해방될 수 없을지도 몰라. 너든, 나든." "물론 간단히 해방될 수 없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해서 문제를 얼렁뚱땅 내버려 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기억에 뚜껑을 덮어씌울 수는 있다. 그러나 역사를 숨길 수는 없다. 내 여자 친구가 한 말이야." "나에 대해서는 이제 마음에 두지 마. 난 그럭저럭 가장 위험했던 시기를 이겨 냈어. 밤바다를 혼자 헤엄쳐 건널 수 있었어. 우리는 제각기 있는 힘을 다해 각자 인생을 살아왔어. 그리고 긴 안목으로 보면, 그때 혹시 잘못 판단하고 다른 행동을 선택..
반대로 이게 너무 무른 인간들은 지구가 오로지 나만 빼고 돈다. (중략) 당신만 각별하진 않다는 말이다. 자신의 상황만이 각별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자존감이 무르다는 방증이다. 자존감이 든든한 자는 자신이라고 해서 특별할 게 없다는 걸 인정한다. 특별하지 않다는 게 스스로 못나거나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게 무심하다. 이 말은 남이 어떻게 생각해도 아무 상관 없다는 말과는 다르다.남이 날 나쁘게 생각하면 기분 나쁘고, 남이 날 좋게 생각하면 기분 좋은 건 당연하다.하지만 거기까지다. 남들이 당신에게 하는 말의 뉘앙스와 조사까지 신경 쓰느라 사용하는 에너지의 절반만이라도, 의식적으로, 당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데 투입해보시라.그렇게 자신..
-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에 의해 변화되는 것이다. 인생은 자신의 변화되는 모습을 되풀이하여 보여주는 시리즈의 연속물이 아닌가? - 사실 나는 미인들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이야기꾼들이다. - 나는 환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환상은 있는 것이다. - 나는 어떤 세계를 소유할 때 그 세계를 황폐화시키지 않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 예술은 당신이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세상이다. Art is anthing you can get away with. - 때로는 삶에서 비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것은 마치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무감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 그 때가 은색에 대해 생각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의 이웃인지 따질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힘닿는 데까지 무조건 이웃이 되어 주라고 말씀하시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사마리아 사람처럼 가서 자비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마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은 추상적이거나 아주 먼 곳에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 안에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해나 달이나 별을 따다 주어도 자기가 베푼 것은 아주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 매일미사
그 글을 완성할 때쯤이면 마음도 정리되어 앞으로 나갈 길을 결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방세를 낼 돈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도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글을 완성하는 것이 마음을 정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듯했다. 그는 2년이 넘도록 같은 문장을 반복해 써 내려갔다. '아버지를 죽였다. 실수였다, 아니라 실수가 아니었다, 아니다 실수였다.....' 문장을 쓰다 보면 자신이 저지른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문장으로만 존재하는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뒤에 쓸 문장을 생각해보았지만 어떻게 써야 앞의 문장이 주는 충격을 덜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실수하는 인간, 정소현. 문학과지성사.
"잘못된 순서입니다. 이유를 알아야 선택의 방향이 결정되는 겁니다." "아뇨, 제 순서는 달라요. 이유를 말했는데도 선택도 받지 못하면 둘 다 잃게 되는 거니까요." "패를 먼저 보이지 않겠다는 거군요." 엉성하게 얹어둔 귤 하나가 떨어져서 아래로 굴러갔다. 송미는 잠깐 쉬면서 그 귤을 계속 보았다. 귤은 빠른 속도로 굴러갔고 송미도 그 귤을 따라 굴러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 같아선 만신창이가 되었을 그 귤을 찾아오고 싶었지만 다시 돌아갈 길이 까마득했다. 외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송미는 그 언덕과 귤을 떠올렸다. + 할머니의 죽음을 서서히 학습해가면서, 계절이 바뀌면서 내가 막연히 느낀 건 이제는 그 누구의 집에서도 화사하게 베란다에 가득 꽃이 피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이..
연중 제16주일 / 농민주일제1독서 예례 23,1-6제2독서 에페 2,13-18복음 마르 6,30-34 복음 마태 6,30-34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 예수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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