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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이게 너무 무른 인간들은 지구가 오로지 나만 빼고 돈다. (중략) 당신만 각별하진 않다는 말이다. 자신의 상황만이 각별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자존감이 무르다는 방증이다. 자존감이 든든한 자는 자신이라고 해서 특별할 게 없다는 걸 인정한다. 특별하지 않다는 게 스스로 못나거나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게 무심하다. 
 이 말은 남이 어떻게 생각해도 아무 상관 없다는 말과는 다르다.
남이 날 나쁘게 생각하면 기분 나쁘고, 남이 날 좋게 생각하면 기분 좋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남들이 당신에게 하는 말의 뉘앙스와 조사까지 신경 쓰느라 사용하는 에너지의 절반만이라도, 의식적으로, 당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데 투입해보시라.
그렇게 자신의 경계를 파악하고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은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다. 모범 답안 따위도 없다. 당신이 스스로 겪고 배워야 한다. 삶 자체가 그렇듯. 당장은 이것부터 명심하시라. '당신만 각별하진 않다는 거.'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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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김어준.



2011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이 부분이 와닿았던 건 자주 우울하고 지나치게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울한 이유가 이런 감정을 갖는 내가 특별하다는 로직 구조를 가졌던 거 같다. 아마도 특별하다는 건 평범하다는 것의 반대 개념으로 특별한 게 더 좋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특별한 사람인데 왜 나에 대해서 저렇게 오해할까, 왜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하고 자책하며 우울해지곤 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정확히는 8개월 만에 다시 돈을 받으면서 일하며 느낀 건 드디어 정말로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과정은 우아하지 않았고 정말로 모범 답안이 있었다면 정 반대의 방법일 거다. 그러나 분명한 건 스스로 겪고 배웠다는 점. 모든 경험이 값진 건 아니지만 그 과정에는 반드시 배울 점이 있는걸까. 아니면 인생은 결국 이 식상함과 평범함 속에서 자유를 찾는 걸까. 그 덕분에  타인을 평가하는데 지나치게 긍정적이지도 않고 부정적이지도 않게 되었고 회사 라는 것의 존재에 진심으로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누구와 함께 지낼 수 있고 누구와는 그럴 수 없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걸 판단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기 위해서 쏟을 에너지를 줄이고 나를 위해서 써야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간 그렇게 도달하고 싶었던 경지인데, 정작 회사에 다닐 때는 갖지 못하고 여기에 와서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딱 여기까지다. 나는 특별한 인간은 아니지만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니까 지금까지와 다른 근성과 방법으로 살아갈 일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 이 과정은 이 다음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것인지 곰곰히 생각하면서 차곡차곡 책도 읽고 넓은 세상도 보고 기록도 많이 해두자. 이 다음엔 그게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