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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시간의 유익함과 무익함

김곰곰 2016. 4. 5. 11:00

 "우리 모두는 온갖 것들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 이윽고 에리가 입을 열었다. "하나의 일은 다른 여러 가지 일들과 연결되어 있어. 하나를 정리하려 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것들이 따라와. 그렇게 간단하게는 해방될 수 없을지도 몰라. 너든, 나든."

 "물론 간단히 해방될 수 없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해서 문제를 얼렁뚱땅 내버려 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기억에 뚜껑을 덮어씌울 수는 있다. 그러나 역사를 숨길 수는 없다. 내 여자 친구가 한 말이야."



"나에 대해서는 이제 마음에 두지 마. 난 그럭저럭 가장 위험했던 시기를 이겨 냈어. 밤바다를 혼자 헤엄쳐 건널 수 있었어. 우리는 제각기 있는 힘을 다해 각자 인생을 살아왔어. 그리고 긴 안목으로 보면, 그때 혹시 잘못 판단하고 다른 행동을 선택했다 해도, 어느 정도 오차야 있겠지만 우리는 결국 지금과 같은 자리에 이르지 않았을까 싶어. 그런 느낌이 들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람들은 매일매일 통근하는 데 소비하는 걸까, 쓰쿠루는 생각해 본다. 편도 평균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아마 그 정도 아닐까. 결혼해서 어린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 도심에 직장이 있는 평범한 회사원이 집 한 채를 가지려면 아무래도 통근 시간을 그 정도 들여야 하는 '교외'까지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하루 24시간 가운데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이 통근하는 데 소비되는 셈이다. 만원 전차 안에서 잘하면 신문이나 문고본 정도는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이팟으로 하이든의 교향곡을 듣거나 스페인어 회화 공부를 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사람에 따라서는 눈을 장대한 형이상학적인 사색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로 볼 때 하루에서 그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을 인생에서 무엇보다 유익한 시간, 양질의 시간이라 부르기는 힘들지 않을까. 사람의 인생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이런 (아마) 의미 없는 이동을 위해 박탈당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그것이 얼마나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고 소모시키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철도 회사에서 주로 역사 설계를 하는 다자키 쓰쿠루가 고려할 문제는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아이는 제각기 손에 작은 게임기를 들었다.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진 외국인 젊은이 둘이 보였다. 첼로 케이스를 끌어안은 젊은 여자도 있었다. 옆모습이 아름다운 여자였다. 밤의 특급 열차를 타고 어딘가 먼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 쓰쿠루는 그들이 조금 부러웠다. 그들에게는 일단 가야할 장소가 있다. 

 다자키 쓰쿠루에게는 가야 할 장소가 없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 떠나는 그녀들이 부러웠다. 같은 북반구 안에 있는 나라로 뻗어가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 후에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더라도, 이 순간을 찬란히 빛내는 사람이 된다니. 여기에 가족도 친구도 남기고 떠난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2010년 6월 7일의 메모. 누군가의 책인가 싶어 검색해봤는데 이 문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면 아마도 나의 감상이려나. 이 때 회사를 다니고 있긴 했지만 기반이 불안정했고 몇 명의 친구들이 미국으로 영국으로 이탈리아로 비슷한 시기에 떠났다. 남아 있다는 건 언제나 성장보다는 안정, 어쩌면 더이상 가능성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다음에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모든 걸 뒤로 하고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늘 부러워하고 갈망했던 것 같다. 떠나온 지금, 그렇게 떠나고 싶어했었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거겠지. 남반구로 올 거란 생각은 못했다. 북반구에 나라가 더 많으니까 어딘가 그 쪽으로 가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고 떠나온 뒤에 고민은 더 커진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지리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내가 여전한 걸지도. 하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은 목마름을 느꼈지만 시원한 물을 마시러 갈 힘 조차 없었다. 즐겁게 살아야지. 무엇이 될지 고민해도 무언가 되지지가 않는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즐겁게 사는 게 최고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