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편 88, 3 참조 하느님, 당신의 저의 하느님, 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나이다. 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은 당신을 애타게 그리나이다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고, 성소에서 당신을 바라보나이다. 당신 자애가 생명보다 낫기에, 제 입술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이렇듯 제 한평생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 부르며 두 손 높이 올리오리다. 제 영혼이 기름진 음식으로 배불러, 제 입술이 환호하며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당신을 생각하고, 온밤 지새우며 당신을 묵상하나이다. 정녕 당신은 저를 도우셨으니, 당신 날개 그늘에서 환호하나이다. - 시편 63, 2,3-4,5-6,7-..
주님, 저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하느님 말씀을 나는 듣고자 하노라.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구원이 가까우니, 영광은 우리 땅에 머물리라.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정의가 분 앞을 걸아가고 그분은 그길로 나아가시리라. 나 주님께 바라네. 주님 말씀에 희망을 두네.-연중 제19주일 2017년 8월 13일, 시편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김애란 - 바깥은 여름, 김애란. 문학동네.
1. 약은 맛있다 나는 어린 시절 파리잡기에 평생 쓸 집중력과 담력을 모두 소진해버렸다.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점점 산만해지기만 했다. 여태껏 인생을 살면서 그만큼 열심히 했던 작업이 또 있었던가? 게다가 성과도 좋았다. 다섯 살에는 천재였는데, 스무 살에 보통 이하가 되어버렸다. 칼피스를 싫어하는 아이도 있을까? 마실 때마다 감동했다. 나의 칼피스 사랑은 평생 이어졌다. 지금도 하얀 바탕에 파란 물방울무늬를 보면 기분이 좋다. 칼피스를 마실 때마다 어릴 적 감동이 되살아난다. 어린 시절이 마냥 즐거웠던 건 아니다. 몇몇 행복했던 순간을 칼피스가 여름의 밝은 햇살과 함께 떠오르게 한다. 2. 달님 달은 나를 자꾸만 과거로 데려간다. 달은 보는 것이다. 3. '문제가 있습니다'까지 우리가 앉아 있는 곳에 ..
내가 아는 의학이란 부재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부재. 내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돌아와 식은 음식을 데워 먹었다. 내가 열 살 때, 아버지는 우리(열네 살, 열 살, 여덟 살짜리 남자 꼬맹이들)를 데리고 맨해튼 북쪽의 오밀조밀하고 풍족한 동네인 뉴욕 주 브롱크스빌에서 애리조나 주 킹맨으로 이사했다. 킹맨은 두개의 산맥에 둘러싸인 사막의 계속 도시였고, 외지 사람들은 대개 다른 도시로 가다가 기름이나 넣으러 들리는 곳 정도로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의 태양이나 저렴한 생활비(아들들을 전부 원하는 대학에 보내려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아니면 심장병 전문의로 개업할 수 있는 기회에 이끌렸을 것이다. 그날 밤, 어머니는 침대에 홀로 누워 흐느껴 울었다. 빈약한 학교 제도..
그러고도 나는 어머니가 못 미더워 골백번도 더 "열한시 정각에, 연못가" 소리를 했더랬다. 그런 내가 한 시간이나 더 늦게 가고 말았다. 도시락도 요리책을 봐가며 좀 멋을 부려봤지만, 내 모양을 내는 데 분수없이 시간을 잡아 먹었다. 미장원에 가서 머리도 새로 했고, 화장도 정성 들여 했고, 옷도 거울 앞에서 몇 번을 갈아입어봤는지 모른다. 그때만 해도 내 용모에 어느 만큼은 자신이 있을 때라 나는 군계일학처럼 딴 엄마들 사이에서 뛰어나길 바랐었다. 그래서 조카까지가 그런 우월감으로 엄마 대신 고모라는 서운함을 메울 수 있기를 바랐었다. 그러다가 그만 한 시간이나 지각을 하고 만 것이다. 점심시간은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워낙 몹시 운 끝이니 울음을 그치고 나서도 흑흑 느끼느라 김밥 하나를 제대로 못 넘..
아무튼 우리의 참을성이 아파트 한 채 값이라면 우린 대단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래의 일인데도 그 일을 계기로 이 집에 시집오고 나서 이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고부 사이를 평화롭게 유지시켜주던 불간섭주의랄까, 쿨한 관계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부모 자식 간에도 자유를 사고할 수 있게 하는 게 돈의 힘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참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양념이 다닥다닥 붙었지만 고춧가루나 고추장 양념은 배제한, 순 서울식 북어구이는 오븐에서 십 분 안에 그 부드럽고 순한 맛이 절정에 이를 것이다. 닭가슴살이 들어간 야채샐러드에 곁들인 드레싱은 시어머니 비장의 솜씨일 터. 갈비찜이나 회 같은 비싼 음식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모임의 성격상 손님들이 미안해..
요즘 보기 드문 조선기와 지붕이라느니 아니 양기와일 거라느니 의견이 분분하지만 품위 있어 보이는 데 비해 유지하기가 힘들거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다 틀린 말이다. 원래 있던 초가 지붕을 걷어내고 올린 지붕은 조선기와도 양기와도 아닌 합성수지로 만든 가짜 기와이다. 공장에서 지붕 형태로 통째로 찍어나온다. 합성수지는 가볍고 힘이 세다. 이번 수해에 집이 형체도 없이 유실됐다 해도 지붕만은 끄떡없이 먼바다까지 떠내려갔을 것이다. 나는 마모도 소멸도 안 되는 것에 대한 병적이고도 비밀스러운 혐오감을 갖고 있었지만 관리하기에 편하고 저렴한 것을 선호하는 남편을 말리지 못했다. 술 먹고 들어오면 오늘도 안 내다버렸냐고 생지랄을 하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요. 견디다 못해 어느 날 정말 내다버렸어요. 전부..
"내가 죽으면 같이 죽겠다고 말해줘."성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미쳤냐? 내가 왜?"정연은 실망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다 까먹었구나. 하긴, 같이 을 본 것도 잊었으니까. 오빠는 방콕에서 만났을 때부터라지만, 나는 그때부터였는데. 우리 둘이서 아현동 어두컴컴한 비디오방에 앉아서 그 대사를 들을 때 부터. 왜, 의 첫 장면에서 임청하가 그러잖아. 내가 죽으면 같이 죽겠다고 말해줘. 죽음 뒤의 적막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스무 살 무렵의 언젠가처럼 정연이 대사를 읊조렸다."잠꼬대 같은 소리네.""지금 들어보니까 그렇네. 그땐 그런 대사들, 다 내 것 같았는데.""그게 그렇더라구.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까 그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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