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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김곰곰 2017. 3. 30. 20:51

1. 약은 맛있다



 나는 어린 시절 파리잡기에 평생 쓸 집중력과 담력을 모두 소진해버렸다. 어른이 되어감에 따라 점점 산만해지기만 했다. 여태껏 인생을 살면서 그만큼 열심히 했던 작업이 또 있었던가? 게다가 성과도 좋았다. 

 다섯 살에는 천재였는데, 스무 살에 보통 이하가 되어버렸다. 




칼피스를 싫어하는 아이도 있을까? 마실 때마다 감동했다. 나의 칼피스 사랑은 평생 이어졌다. 지금도 하얀 바탕에 파란 물방울무늬를 보면 기분이 좋다. 칼피스를 마실 때마다 어릴 적 감동이 되살아난다. 

 어린 시절이 마냥 즐거웠던 건 아니다. 몇몇 행복했던 순간을 칼피스가 여름의 밝은 햇살과 함께 떠오르게 한다. 




2. 달님 



달은 나를 자꾸만 과거로 데려간다. 달은 보는 것이다.




3. '문제가 있습니다'까지



우리가 앉아 있는 곳에 한 군인이 다가왔다. 밤에 술 취해서 노래하고 로스케하고는 복장도 품격도 완전히 달랐다. 어릴 땐 간단한 러시아어 정도는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마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 것 같다. 그 군인이 나를 안아 올리더니 호텔에 가자고 했다. 나는 어렸지만 알았다. 이 사람한테 나만한 자식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를 보고 아이들 생각이 난 것이다. 선생님은 다녀오라고 했지만 나는 무서워서 계속 고개를 저었다. 우오즈미 시즈카 선생님, 그때 갈 걸 그랬다고 평생 후회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귀국하면서 나한테 일본 주소를 주었다. 나는 그 종이를 보물처럼 간직했다. 




4. 푸른 하늘, 하얀 치아 



다섯 살이었다. 유치원에 갔다가 3일 만에 그만뒀다. 그네를 타는데 눈꼬리가 올라간 삼각형 얼굴의 남자 아이가 그네를 옆으로 흔들어 내 그네에 세게 부딪쳤기 때문이다. 다음 날부터 나는 집 앞의 아카시아 가로수 아래 쭈그리고 앉아 못으로 땅을 쑤시고 놀았다. 2, 3일 지났을 때 유치원 아이들이 줄지어 거리를 가로지르는 걸 보았다. 배낭을 짊어지고, 물통을 메고, 기쁨과 즐거움에 겨워 꺄아꺄아 떠들어대며 이동했다. 이럴 수가. 나는 유치원을 그만두는 게 아니었다고 깊이 후회했지만, 인생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생기게 마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고 다시 쭈그리고 앉아 땅을 후볐다. 




5. 늘 읽었다



나는 아마 태어날 때부터 활자를 좋아했을 것이다. 



세계는 성장했고 나도 성장했다. 출퇴근길에도 책을 읽었다. 월급을 받아 내 돈으로 책을 살 수 있어 좋았다. 



왜 이토록 책을 읽는 걸까?

나는 취미가 없다. 게으르로 몸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여 소학교 때부터 체육을 못했다. 배구를 할 때에도 나 혼자 멍하니 서 있었고, 공을 맞아도 멍하니 있었다. 공은 아팠다. 체육뿐만 아니라 음악도 못했다. 음치였다.




6. 어머니에 대하여, 아버지에 대하여 



어떤 상황에서든 참는 게 당연했다. 

인내는 중요한 덕목이었다.

참는 데 이력이 나면 조금 고생스럽다고 해서 주저앉진 않으니까. 




7. 책을 가까이 하지 말라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어른들은 걱정하지만 활자보다 재미있는 것이 얼마든지 있는 세상이니까. 

책은 인류의 지혜로 가득하지만 그와 함께 독도 포함되어 있다. 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그 독에 영혼을 빨리고 있는 것이다.




8. 쇼와시대



언니는 "너, 잠깐 이리 와봐" 하고 나를 마루젠으로 끌고 갔다. 마루젠에는 나도 자주 갔지만 늘 책만 봤기 때문에 옷 매장이 있는 줄은 몰랐다. 언니가 눈이 번쩍 뜨이도록 화사한 에메랄드그린 색 스웨터와 카디건 앙상블을 사주었다. 꿈만 같았다.

 수십 년이나 지난 후에 사촌언니가 말했다. "저기서 꾀죄죄한 여자가 걸어오는데 가까이서 보니 요코잖아. 불쌍해서 그냥 갈 수 있어야지."

그 화사한 스웨터는 아마 수입품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불쌍했다. 아, 불쌍해.

 사촌언니의 따스하고 호방한 마음씀씀이에 눈물이 나려 한다. 그 옷은 오랫동안 나의 나들이옷이었다.




9.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집



 아버지는 평생 자기 집을 갖지 못하고 죽었다. 

 평생을 셋집이나 사택에서 지냈고, 그것도 허구한 날 이사를 다녀야 했다. 



 자식인 우리는 그런 아버지와 운명공동체였으니 특별히 정들만한 집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집에 특별한 애착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열여덟에 도쿄로 올라온 후 1엔이라도 싼 곳을 찾아 전전하는데, 친구가 이사를 너무 자주 하면 취직할 때도 불리하고 시집도 가기 힘들다고 충고했다. 




신혼생활을 회반죽으로 마감한 2층 건물의 세 평짜리 방 한칸에서 시작하여 여인숙 앞의 낡은 아파트로 옮겼다가 공단 아파트가 당첨되어 욕조가 딸린 집으로 이사했을 때는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나는 너무 기뻐 다다미에서 뒹굴다가 아침부터 목욕을 하고 목욕이 끝난 후에 한 번 더 뒹굴고 다시 목욕탕으로 뛰어들었다. 그 결혼생활 중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




10. 아름다운 사람



우리는 가난하고 어수선하게 살았다. 어느 날 엄마도 미망인이 되었다. 아직 장례식 절차도 마무리되지 않았을 때, 아름다운 사람이 집으로 뛰어들었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키가 크고 늘씬한 몸에 정장을 기품 있게 차려 입고 세련된 하이힐을 신었다. 지적이고 고상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사람이 엄마를 붙잡고 말했다. "도쿄로 올라와. 내가 하는 일을 전부 나눠줄게. 보험 영업이라 해도 나는 큰 회사를 상대하니 집으로 일일이 찾아가는 거랑 달라. 처음엔 나랑 같이 다니면서 일을 배우면 돼. 나는 여자 혼자 힘으로 엄마도 돌보고 두 아이도 키웠어. 그저 그런 남자들보다 경제적으로는 더 나아. 너라면 할 수 있어. 우리 아이들 모두 대학에 보내야지."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그녀는 엄마의 진정한 친구였다. 미망인이 되면 당장 내일부터 돈 걱정이다. 다정한 말뿐인 동정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오만함은 없었다. 성실하고 진지하고 정말로 엄마와 인생을 함께 하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당연한 듯 책임을 나누려는 태도로 도쿄에서 열 일 제치고 달려와 준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나는 그만 압도당하고 말핬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야? 남편 잃은 지 얼마나 됐다고, 나한 보험 영업을 하라니. 정말 어이없어."

 엄마는 그때 빈말이라도 좋으니 듣기 좋은 위로와 동정의 말을 원했던 것이리라. 




11. 노인은 노인으로 좋다. 



구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죽을힘을 다해 겨울 산에 오르거나, 바다 속으로 뛰어들거나, 철봉으로 기계체조를 한다. 나이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표출한다. 추하다. 나이를 이긴다든가 진다든가 그런 표현에 구역질이 난다. 노인은 노인으로 좋지 않은가?




12. 지금, 여기 없는 료칸 스님



 료칸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지만 읽기 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내가 료칸이 놀아줬던 아이라면 좋았을 텐데. 료칸에게 쌀 한 사발 시주한 농가의 아내였다면 좋았을 텐데. 

 살아있는 인간이 발하는 매력이나 인품에 대해서는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고 목소리를 듣고 이 눈으로 보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거다. 




13. 아이와 같은 눈높이로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온 것이었다. 후회란 이런 감정이던가?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안 순간이었다. 나도 소풍이라는 걸 한번 가보고 싶었다. 아이의 생활에는 스케줄이라는 게 없다. 순간순간을 살 뿐이다. 내가 한 일의 결과는 나에게 돌아온다는 사실도 알았다. 내 얼굴이 부러움 때문에 뾰로통해졌다. 유치원의 추억은 그것 하나뿐이다. 




14. 아무것도 모른다



그 후엔 미할코프 감독의 열성팬이 되었다다. 체호프의 원작을 몇 편 모아서 만든 영화를 보고 울었다. 귀족이든 농민이든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게도 열심히 살아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모두 똑같았다. 저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 인생을 살고 있다. 그 사실이 나에게 전달되었고, 나는 머나먼 나라 사람들의 삶에 공감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좋다. 아무것도 몰라도 좋다는 걸 알았고, 모든 걸 아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아는 것에만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15. 책은 훌륭하니, 사랑하여 소녀여



 나는 일생의 대부분을 활자를 읽으며 지냈다. 일한 시간보다 가사노동을 한 시간보다 글자를 보고 있었던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다 잊어버렸다. 요즘은 점점 더 잊는다. 마치 배경음악 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갈 뿐이다. 장르도 뒤죽박죽. 



 지금 할머니가 되어 하루 종일 침대 안에서 책을 읽으니, 아~ 정말 행복하다. 내겐 단 하나의 쾌락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행복했다. 




16. 책 처리법 



 책을 빌려서 읽는 시기는 내가 사회인이 되어 돈을 벌 때까지 줄곧 이어졌다. 

 아마 나는 책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책을 빌려 읽는 것도 정말 멋진 일이다. 책은 내 손에 남지 않는다. 빌린 건 돌려줘야 하니까. 그러면 책이 좁은 주거 공간을 독점하는 일도 없다. 



 어쨌거나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 책만 늘어갔다. 



 취미도 없고 술도 안 마시는 나는 책만큼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었다. 



 나는 활자만 읽으면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젊은 애들이 듣지도 않으면서 계속 음악을 틀어놓는 것과 마찬가지, 그러니까 배경 음악 같은 것이다. 읽어도 바로바로 잊어버린다. 그런데 책은 읽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열 권을 읽으면 '아아, 읽길 잘했다'라고 생각하는 책보다 '뭐, 일단 읽었군'이라든가 '아아, 돈 아까워' 하고 생각하는 쪽이 더 많다. 1년에 한 권이라도 '아아, 훌륭하다. 세상은 역시 한없이 아름다워. 살아 있길 잘했다. 이 책은 다른 사람한테 빌려주기도 아깝다'라는 책을 만나면 운이 좋은 편이다. 요즘은 3년에 한 권 정도 만난다. 



 나는 책을 읽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다. 

 인격이 고급스러워지는 것도 교양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때 그때 놀라고 싶을 뿐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나의 변변찮은 경험이 아닌 타인의 귀중한 경험을 나눠 받기 위해서이고, 보통 사람에겐 없는 재능을 접함으로써 나의 가난한 마음을 잊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은 빨간 재능에 푹 잠긴 채 빨간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고, 내일이면 파란 재능에 물들어 '와, 세상이 이렇게 파랗구나' 감탄할지도 모른다. 아마 모레는 시커먼 책을 읽을 것이다. 그렇게 책은 쌓여간다. 자꾸자꾸 쌓여간다. 




17. <여섯 손가락의 남자>는 어디에 있나 



 나는 도서관이나 친구에게서 책을 빌렸다. 

 나는 비정상적으로 책을 좋아했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게으름뱅이였다. 

 운동이 싫으니 체육 시간도 싫었다.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독서는 드러누운 채 진행되었다. 

 엄마는 내가 책을 읽으면 발로 찼다. "냉큼 --해." "--는 했어?" "넌 정말 게으름뱅이구나."

 그래도 나는 읽었다.

 아이라서 자랐다. 키도 커졌다. 엄마에게 비판적이 되었다. 

 "책 같은 걸 읽으니까 건방져지는 거야."

 이제야 수긍한다. 정말이다, 지당한 말씀이다. 




18. 흠칫하다



 나는 좀 더 흠칫하고 싶다. 나는 노인이 되어서야 햣켄이 좋다고 대놓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노인이 되어서야 내가 이 세상에 뭘하러 왔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엔 이렇다 할 볼일이 없다. 볼일은 없는데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이따금 아아, 살아있구나, 하고 실감할 수 있으면 좋은 거다. '그래서 어쩌라고?'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실감은 기분이다. 



 햣켄 님, 당신은 무슨 볼일이 있어 이 세상에 왔나요?

 살아 있기 위해 왔지요?

 나는 아무 볼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윤기가 흐르는 밥알도 깡통 냄새 나는 통조림 복숭아도 더 먹고 싶거든요. 




19. 하늘과 초원과 바람뿐인데 



 몽골 영화를 처음 봤다. <동굴에서 나온 누렁 개>라는 제목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를 봐왔고 좋아하는 영화도 몇 편이나 되지만 이만큼 내 마음을 뒤흔든 영화는 없었다.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인지 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극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내가 아는 몽골은 초원과 파오와 유목이고, 내가 몰랐던 것은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젊은 부부와 어린 세 아이가 있다. 나는 내 아들 외에 다른 아이를 진심으로 귀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세 아이는 내 아들 이상으로 귀여웠다.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귀여울 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3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그 귀여움을 느끼고 싶다. 60년 전으로 돌아가 야무지고 강한 아이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 젊은 아버지가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와 길 잃은 어린 나를 찾아내어 영화처럼 안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40년 전으로 돌아가면, 좀 배웠다고 억지 이론을 늘어놓거나 남녀평등을 외치며 세상 밖으로 나가지 말고, 그저 엄마로서 아내로서 식구를 먹이기 위해 치즈를 만들고, 쇠똥을 태워 고기를 굽고, 또 쇠똥을 갖고 노는 아이를 묵묵히 지켜보고 싶다. 말을 타고 멀리 나가는 남편을 그저 믿고 기다리고 싶다. 식사를 하면서 최소한의 필요한 말로만 소통하고 싶다. 

 그 광대한 하늘 아래 지평선까지 펼쳐진 초원 위에서 고독 따위 끼어들 틈 없는 농밀한 시간을 살아가는 그들 가족의 모습에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20. 큰 눈, 작은 눈



 마침 5월 5일이었다. 

 "역시 우리 아이들, 그떄는 천재였어." 3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씩씩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비싼 고이노보리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우리 아이들의 고이노보리를 오랜만에 보았다.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네." "벌써 머리가 벗겨지고 있어." 과거에 천재였던 아이들은 지금 보통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다. 늙은 어미들은 내년에도 이 고이노보리를 꺼내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알았다. 피카소는 성숙한 채로 태어나 세월이 흐를수록 아이가 되고 싶었던 천재였다는 사실을. 




21. 행복투성이 



 나는 감정만 소비하고 머리는 전혀 쓰지 않았다. 

 머리로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1년간 기절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취 상태로 1년 동안 행복한 환각을 즐겼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절 상태로 지냈던 1년이 내 인생에 없는 편이 나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떠한 경험이든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편이 좋다. 토가 나오도록 푹 빠졌던 나를 대견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22. 도움이 되고 싶다. 



 이런 내가 소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10년 이상 매일 아침 잘도 일어났다. 생각하면 지금도 멍해진다. 나는 굼벵이도 지각대장도 아니었다. 마흔이 넘을 때까지 일단 사무소라는 곳에 가서 일했다. 그 후로 자택에서 일했지만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늘 6시 반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아이가 나가자마자 2층으로 뛰어올라가 미지근한 이불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갔지만. 

 그 순간의 행복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아, 살아 있다, 죽어도 좋다, 라고 생각했다. 



 야채주스와 빵을 먹으며 노인은 참 한가하다고 생각하면서 또 테이블 앞의 커다란 TV를 켠다. 아아, 일해야 하는데, 일해야 하는데, 생각하면서 안 하니까 역시 한가하다. 



 예전에 아직 이불 속에 있는데 딩동, 하고 울어서 택배인 줄 알고 나갔더니 세 사람이 서 있었다. 미팅 약속을 깜빡했다. 그 후로 생각했다. 잠옷 같지 않은 잠옷을 입자. 찾아보니 얼마든지 있었다. 기다란 원피스에 타이츠, 여러 색상과 무늬를 잔뜩 사들여 거울에 비춰보니 검정색이나 회색이나 자잘한 물방울무늬는 전혀 잠옷으로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 가는 날, 잠옷 위에 벨트를 둘러보았다. 괜찮네, 괜찮네. 위에 코트를 걸치고 부츠를 신고 병원에 갔다. 나는 급기야 잠옷 차림으로 외출할 정도의 귀차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천성에 노화가 박차를 가한 것이다. 




23. 나는 몹쓸 엄마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착실해졌다. 엄마인 내가 정성을 쏟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맥이 풀렸다. 나는 머리를 조아리고 신께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아들에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런 위대한 힘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정말 기뻤다. 후, 후, 후, 그 대상이 엄마인 나는 아니지만. 사람은 사랑을 사랑함으로써 어엿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이제 안심이라 생각했다. 내 역할은 끝났다. 아들은 아들의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되돌아보면 아이 때문에 참으로 즐거운 인생이었다. 어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아이가 귀여웠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에든 '아, 귀엽다'라고 생각했으니 지금도 추억하며 싱글싱글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이가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만 가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거기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힘을 얻고, 돈도 벌고, 상대를 지킬 마음도 생긴다. 타인과 원만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무엇을 했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아들이 귀여웠을 뿐이다. 어리석도 추한 엄마 행세를 했을 뿐이다. 




24. 아무래도 좋은 일



 오늘 옷장을 열었더니 옷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주었는데 그게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옛날부터 잘 잊는 편이었다. 아마 내게 있어서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리라. 아무래도 좋은 일이 지나치게 많은 일생이었다. 

 이런 생각도 강하게 든다. 살아도 살지 않아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생이었다는.

 하지만 필사적으로 살아냈다. 두 번 다시 이렇게는 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일도 이를 악물고 해냈다. 이젠 그런 일에 대한 기억도 신선도가 점점 떨어져 아득하기만 하다.

 인간은 잊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문제가 있습니다. 사노 요코, 이수미.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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