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요즘 보기 드문 조선기와 지붕이라느니 아니 양기와일 거라느니 의견이 분분하지만 품위 있어 보이는 데 비해 유지하기가 힘들거라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다 틀린 말이다. 원래 있던 초가 지붕을 걷어내고 올린 지붕은 조선기와도 양기와도 아닌 합성수지로 만든 가짜 기와이다. 공장에서 지붕 형태로 통째로 찍어나온다. 합성수지는 가볍고 힘이 세다. 이번 수해에 집이 형체도 없이 유실됐다 해도 지붕만은 끄떡없이 먼바다까지 떠내려갔을 것이다. 나는 마모도 소멸도 안 되는 것에 대한 병적이고도 비밀스러운 혐오감을 갖고 있었지만 관리하기에 편하고 저렴한 것을 선호하는 남편을 말리지 못했다. 




술 먹고 들어오면 오늘도 안 내다버렸냐고 생지랄을 하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요. 견디다 못해 어느 날 정말 내다버렸어요. 전부터 점찍어두었던 입양기관 앞에다요. 남편은 아이 어디 갔냐고 묻지도 않고 마치 우리에게 그 아이가 없던 때로 돌아간 것처럼 굴더군요. 그래도 불안해서 그 사실을 감쪽같이 숨기려고 이사까지 갔죠. 사람이 짐승만도 못하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그 와중에도 또 아이를 만들었으니까요. 제발 이번만은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은 그이도 마찬가지였겠죠. 기도가 헛되지 않아 둘째는 정말이지 예쁜 천사 같은 딸이었어요. 그이도 그때부터 마음을 잡고, 툭하면 그만두던 직장을 착실하게 다니게 됐죠. 사람 사는 행복이 이런 거로구나 싶게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가 고맙고 달기만 하더라구요. 




인간이기에 인간이 아니었던 시간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망은 정욕보다도 물욕보다도 강하다는 걸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그 욕망에 굴하지 않을 것이다. 여태까지도 잘 방어해왔다. 이러한 나를 야유하듯이 '소아마비'가 말했다. 

"내가 아까 말한 거 여태까지 아무한테 말하지 않던 거예요. 눈치채고 있는 사람도 없어요. 완전범죄였는데  말해버리니까 되게 개운하네요. 살 것 같아요."

다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을 줄 안 걸 말해버리고 나니까 이렇게도 살 것 같다는 데 동의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남편 말대로 나는 도덕적인 강박증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삼촌을 좋아했는데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도 삼촌에 대해 입에 담지 않았고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삼촌을 좋아했다는 게 생각만 해도 쓸쓸해지는 상처가 되었다. 삼촌에게선 우리 식구들에게는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옷자락에서 풍기는 냄새까지 향긋했고 무뚝뚝한 식구들에게는 없는, 연민을 숨기지 못하는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삼촌을 통해 막연히 동경하게 된 교양인의 냄새가 사라진 우리 집은 어린 나에게 무지렁이들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

기나긴 하루, 빨갱이 바이러스, 박완서. 문학동네.





+ 요즘 들어 종종 이미 없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아무도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사랑했지만 무책임했다. 누가 누구의 삶에 대해서 관여하고 집중하지 않는 이상, 가지게 되는 평범한 무관심. 어쩌면 그 사람을 위해서 일부러 모른 척 더 멀리 멀리 말을 보내버렸는지도 모른다. 상가 건물의 회색빛 계단을 올라 문을 열면 거실이 있었다. 큰 창에서는 하얀 빛이 들어왔고 집보다 덩치가 큰 커다란 갈색 가죽 쇼파가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다. 가득찬 찬장에는 빈 자리가 없었고 먼지도 없었다. 그 집에는 먼지가 없고 싱싱한 나무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언제나 큰 웃음소리가 있었으나 공허했고 사람들은 금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왼편으로는 침대가 없는 작은 방이 있었다. 그 방에는 옆으로 누워있는 서랍에 책과 비디오 테이프, 카세트 테이프, LP같은 것들이 있었고 블루나 비트 같은 영화 포스터도 붙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집은 여기까지다. 오른 편으로 들어가면 안방도 있고 현관문과 신발장 너머의 벽 안에는 부엌도 있었다. 큰 거실 창가에서는 그때까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보이기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요즘 생각하는 그 방의 주인은 예쁘게 생긴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사람이었는데 오래오래 잠을 자고 영화를 많이 보았다. 활동적이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늘 그 집안에서 가족으로만 만났다. 그러다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거리에서 언니를 만났을 때, 반가움만큼 당혹감이 더 컸다. 그때의 얼굴은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바삐 걷는 발걸음 보다 더 멀리, 눈빛은 저 멀리 가있었다. 그 뒤로는 한 번도 만나지를 못하고 장례식장에서 보았다. 아마 1년 후 쯤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기억이 없을 나이도 아니었는데 두터운 옷을 입은 을씨년 스러운 겨울이었다는 것 외엔 몇 월이었는지, 꽃은 있었는지, 영정사진은 어땠는지 기억 나는 게 없다. 이상할 정도로 기억나는 게 없어서 모두가 조심스러워하기에 기억을 폐기해버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라 요즘 들어 문득 더 생각을 해본다. 재능이 참 아까웠던 사람이라 더 생각이 난다. 언니에게선 그 집 식구들, 우리 식구들에게 없는 무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