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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자식의 자율성과 창의성 배양을 위해 일부러 그랬다기보다 그저 자신들의 삶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런 환경에서 성장하다 보니 나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어른으로 컸고 나 또한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다. 



또한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잃는 것이 반드시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는 태도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가 나 자신과 기쁘게 맺은 약속들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나 '일과 사생활의 균형'이라고 좋게 표현할 수도 있다. 하루 대부분의 생산적인 시간을 내가 직업으로 하는 일에 투입하는데 내 마음과 열정이 그곳에 없어 빈껍데기처럼 일한다면, 그만큼 충족되지 못한 마음과 열정을 다른 곳에서 어떻게든 해소시켜줘야 한다. 그러려면 사생활이 정말 재미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사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게 더 힘들어 보인다. 일의 문제는 그만큼 인생을 통들어서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나의 삶의 질에 가장 깊숙이 영향을 주는 문제인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무리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리한 대가를 언젠가는 상대에게 딱 그만큼 받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겁고 힘든 연애의 서막을 예고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려고 애쓰는 것은 착한 게 아니라 비굴한 것이다. 




'예전 같지 않다' 싶은 상황일 떄는 잠시 시선을 일이나 다른 데로 돌리면서 시간을 얼마간 흘려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내가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때로는 상대방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혼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 이런 일에 너무 상처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사랑에서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나 자신에게는 '진실함', 상대한테는 '관대함'인 것 같다. 사랑하면 상대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질 수가 있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먼저 누군가가 관계를 내려놓으려고 하는 순간부터 이미 관계는 이별에 들어선 거나 다름없지만 관계가 완전한 마침표를 찍기까지는 이래저래 부침을 겪는다. 





그러고 보니 그떄도 주변의 유부남 아저씨들은 흥미진진한 눈빛을 띠며 "괜찮겠어요?" 라고 걱정해줬다. 세상은 실로 배려심 깊은 한가한 아저씨들로 넘쳐난다. 






결혼이 인생에서 하나의 큰 획을 그어주면서 기분 전환이나 새로운 도전이 될 수는 있어도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결혼은 동화책처럼 "그들은 그 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도 아니고 결혼 전 일상처럼 좋았다가 좋지 않았다가를 반복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삶이다. 결혼을 해도 둘다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임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그래도 나는 서로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완전에 가까운 애정 표현은 결혼이라 생각하고, 결혼을 하면서 다른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하거나 내가 이해받으려고 노력한다는 면에서는 결혼이 꽤 의미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가사 분담 때문에 몇 번의 갈등과 싸움을 겪다 보면 경제력을 가진 여자들은 가사도우미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그건 그것대로 효율적이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빌려 쓰는 것에 대해 그다지 마음이 편치가 않다. 감정 노동하지 않으니 편하고 좋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대면하지 않는 것 같아서다.

우리 가정은 남편과 나, 둘이 같이 구축한 세계다. 우리가 더럽힌 것, 먹는 것, 우리가 낳은 것, 모두 우리가 직접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효율적인 노동력을 빌리기보다 우리는 우리대로 효율성을 기해보기로 한다.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했다고 손해 봤다며 억울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반대의 경우로도 인생의 많은 날들을 채우게 될 테니까. 서로의 노고를 고마워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걸로 경시하지 않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많은 것들은 사랑으로 함께해나갈 수 있다. 악처를 연기할 필요도, 현모양처로 무리할 필요도 없다. 인간적인 공정함과 낭만적인 관대함을 최선을 다해 양립해나가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다. 








'사랑파'냐 '현실파'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쁜 것은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떤 가치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만큼 하는 일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다. 안 하던 짓을 한다는 것, 혹은 하던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체질 개선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일을 바꾸는 것은 과거의 나를 완전히 지우는 것 같지만, 자신의 본질적 자산은 그 어디에도 가질 않고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지금 하는 일에 힘이 되어줄 수 있다. 






어떤 일을 어디서 하더라도 일의 본질은 같다. 최선을 다해야 하고, 사람들과 조율할 줄 알아야 하고, 규칙을 따라야 하며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조직 생활도 나의 지울 수 없는 과거이자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곳임을 인정한다. 변화 이전의 모습이 '악'이고 변화 이후의 모습이 반드시 '선'은 아니다. 








인생에는 시범 게임이란 없다. 본 게임에서 실패했다면 실력이든 노력이든 재등이든 부족한 부분을 키워야지 과정과 경험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실패를 직시하고 어설픈 위로나 정신 승리를 하지 않는 단단한 사람들이 좋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들은 그 이전에 단 한 번이라도 '이겨본' 경험이 있기에 저런 말을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할 수 있구나 싶다. 이겨봤다고 해서 실패를 단순히 질책하거나 매도하는 게 아니라 지는 것과 이기는 것 사이에는 진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존재함을 외면하거나 축소하진 말자는 마음인 것 이다. 







오히려 문제가 더 복잡해지거나 악화될 수 있어 나만 손해라며, 남들이 꾹 참고 넘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논지를 편다. 불의에 저항하는 일은 옳지만 내 가족이나 친구라면 말리겠노라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며 '똑똑한' 이들은 그렇게 할 거라고 자기 합리화한다. 한데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바로 이와 같은 자기 합리화하는 '정신 승리' 심보를 보란 듯이 악용할 것이다.

가해자를 비롯 남들 보기에 사소한 문제에 연연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치사하고 구차해지는 기분이나. 그러나 나에게 중요한 문제는 크고 작은 게 따로 없다. 사소해도 내게 중요하면 바로잡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 들면 더 복잡해진다고? 가만히 두면 겉으로는 평온할지 모르나 안으로는 자신이 지고 말았다는 절망감이 썩어 오랫동안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는 말로는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고 한다. 천만에, 사실 우리는 그 똥이 두려워서 피하는 것이다. 

모든 크고 작은 저항에는 힘겨움이 따른다. 감정 노동의 힘겨움, 스트레스나 번거로움, 구설수, 시간낭비, (내가 이런 부당한 일을 당할 만큼 약자임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 그리고 (가해자의 앙심을 사게 되는) 보복의 두려움도 가지게 된다.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고 저항하는 일은 아주 작아 보이는 문제라도 불안하고 외롭고 두려운 일이다. 





담당자는 거듭 전화로 사과를 했지만 나는 말로 사과받기보다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들인 노고와 시간, 그리고 당일 날 다른 일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기회비용의 상실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원했다. 나는 말이나 한 끼 밥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떄우는 것이 미안해서 하는 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 사과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내가 도리어 나쁜 사람이 된 것 처럼 느껴야 하고, 사과하는 의미의 밥 한 끼 먹으러 시간과 교통비 들여 일부러 그 회사까지 가는 게 나를 위한 일일까. 먹으면서 소화가 될 턱도 없다. 


나는 미안하다는 마음을 구체적인 형태로 보상받고 싶었다. 원래부터 신뢰의 관계가 아니라면 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인 물질적 보상이다. 



이런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부탁을 섬세하게 해야 했다.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게 고마운 만큼 상대가 그 부탁을 흔쾌히 '거절'할 수 있게도 해줘야 한다. 못해거든, 하기 싫어서든, 거절하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거절 이유다.

부탁해서 거절당한 사람은 거절한 이유를 알거나 물어볼 권리가 없다. 더더군다나 토라지거나 화를 내거나 칼을 갈거나 '다시는 저 인간한테 부탁하나 봐라' 같은 마음을 품어서도 안될 것이다. 




부탁이 부탁다우려면 몇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부탁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해결 방법이 없을 떄, 아무런 다른 대안이 없을 때, 부탁한 데에 대한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를 각오와 부담감을 가질 때 하는 것이다.  (중략) 상대방이 너무 쉽게 내게 부탁하면 '저 사람은 도대체 뭘 믿고'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친했나 싶기도 하고, 심지어 '하찮은 부탁'처럼 표현할 때는 기분도 상한다. 










현철   전 늘 하한선을 정하라고 하거든요. 어떤 부분은 양보할 수 있되 어떤 부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  

        그게 하한선인데 전 그게 침해당하면 그만두라고 얘기해요.



현철   사소한 게 중요한 건 우리도 모르게 물질 원칙이라든지 경제 원칙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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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한겨레 출판.





+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고 제목과 소제목이 참 좋았는데 전체적으로 고개를 자주 끄덕이기 보다는 몇 번인가 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반적으로는 동감하는 부분이 대부분이지만 표현 방법이라던지 일에 대한 태도나 사랑을 대하는 열정 같은 게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달랐다. 아마도 이십대, 결혼 전이었다면 맞아 맞아 하면서 책 머리를 접는 부분이 훨씬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을 더욱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삽심대가 된 지금으로서는 이미 그것은 나의 가치관으로 정립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굳이 타인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내가 이제서야 경험하는 것들, 부당함이나 결혼 같은 건 크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 순서와 제목이 좋았다. 


서문 '어떻게'를 대답하다.


1부  자발성 

  • 생각의 순간
  •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인생
  • 사람이 일하는 곳 그 어디라도
  • 영감이 떠오르든 말든
  • 연애에 바라는 것 


2부  관대함

  • 기꺼이 상처받을 것
  • 나의 사랑만은 특별하니까
  • 같은 불완전한 인간
  • 네가 내 곁을 떠난다 해도 인생은 계속될지도 몰라
  • 현실 생활에서의 평등


3부  정직함

  • 인간관계 스트레스 대처법
  • 관계는 화학작용
  • 우리는 사랑일까 현실일까
  • 어른의 성
  •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 미등단 작가의 어떤 고백 


4부  성실함

  • 과거가 현재를 지탱한다
  • 나를 쉽게 위로하지 않을 것
  • 실패에 대처하는 방식
  • 남과 다른 목소리
  • 이기적인 것이 필요하다


5부  공정함

  • 나를 존중하기
  • 타인과의 비교
  • 복잡한 미움이 가르쳐주는 것
  • 부당함에 저항하기
  • 부탁과 거절 


대담  어떤 태도를 가질 때 내가 가장 충만한가 

       임경선 × 김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