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내가 죽으면 같이 죽겠다고 말해줘."

성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미쳤냐? 내가 왜?"

정연은 실망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다 까먹었구나. 하긴, 같이 <몽중인>을 본 것도 잊었으니까. 오빠는 방콕에서 만났을 때부터라지만, 나는 그때부터였는데. 우리 둘이서 아현동 어두컴컴한 비디오방에 앉아서 그 대사를 들을 때 부터. 왜, <몽중인>의 첫 장면에서 임청하가 그러잖아. 내가 죽으면 같이 죽겠다고 말해줘. 죽음 뒤의 적막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스무 살 무렵의 언젠가처럼 정연이 대사를 읊조렸다.

"잠꼬대 같은 소리네."

"지금 들어보니까 그렇네. 그땐 그런 대사들, 다 내 것 같았는데."

"그게 그렇더라구.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서른이 되고 보는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남의 것이야. 내 건 하나도 없어."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