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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없어진다. 영어, 일어, 한국어를 동시에 보다보면. 그러니까 영어를 한국어만큼은 아니어도 일어만큼만 할 줄 알아도 이 번거로움이 없을텐데 하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기술의 발달로 번역기와 온갖 사전, 그리고 영어 잘하는 갱님 덕분에 이렇게 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 그렇게 하루 종일 온갖 언어를 보다 한국어를 곱씹으니 날 힘들게해도 한글이, 내 모국어가 내게는 가장 편안하고 내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일이 좋고, 정말 정말 힘들어도 그래도 또 다시 책상에 앉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한 것 같다.

 어떻게 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해왔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내가 납득하고 남에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되는 거겠지. 책을 많이 보다보면서 느낀 것, 내가 번역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실수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 스트레스를 거의 죽을만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지만 또는 성격이지만 읽는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예민하지 않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이 전하고자 하는 그 안의 메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준다. 책에 관련된 종사자가 아닌 이상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실망하더라도 모두가 편집자나 번역가의 이름을 외고 평생 저주하지 않는다. 좋은 일을 하려고 열심히 했지만 그때는 거기까지 밖에 하지 못한 것이고 부족한 부분은 재판을 찍을 때 수정하면 된다. 책에, 원고에, 디자인에, 다른 책에 파묻혀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책으로 나오면 보인다. 그러면 그때 또, 잘 하면 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능했다. 너무나 신성하게 여기고, 도무지 범접할 수 없는 꿈과 같았던 일이라면 아마 한 권도 제대로, 아니 엉망으로라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해냈기 때문에 다음이 있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일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밥벌이인 동시에 조금의 보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 분명히 아주 뛰어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조용히, 할 수 있는만큼 하면 된다. 세상 모든 사람이 김연아가 되거나 결혼해야하거나 박찬욱이 되야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맞는 것 같다. 내 눈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오타가 보이고, 세네카가 밀려나고, 이런 그림이 이 책에 있어서 정말 좋다, 같은 것들이 보이니까. 일본어를 읽어내면 적당한 문장의 한국어가 떠오른다. 바로는 떠오르지 않지만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고 있을 수 있는 뇌 한구석이 비어있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나는 질책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좋은 점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마음에 안들고 저것도 마음에 안드는 게 많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편집이나 윤문이나 번역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괴로울 거다. 세상에 자기가 쓰지 않은 글인데 얼마나, 못난 점이 많고 미워보일까. 물론 그런 사람도 반할만큼 황홀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멋진 작가다! 그 사람의 몫은 그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 티 안나게 머릿말이 맺음말까지 원활하게, 무난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해주는 일. 다른 길로 빠지지 않도록 말이다. 그것 뿐. 조심히 나의 의견을 더해보는 것. 그래서 좋으면 더 좋고! 




+ 원고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이 얼마나 파격적인가? 실은 그렇지도 않다. 원고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완벽한 원고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원고에는 플라톤적 이상이라는 것이 없다. '옳은' 원고가 되는 데 꼭 한 길만 이는 것은 아니다. (중략) 명백한 실수를 바로잡고 눈에 띄는 흠을 전부 없앤 원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가능한 한 여러 측면에서 일관성이 유지된 원고. 되도록 당신의 지정 매뉴얼을 따르되, 그 정도가 타당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원고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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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편집자, 캐럴 피셔 샐러 지음. 허수연 옮김.



+ 제 마음이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을 때, 저는 자신을 이렇게 타이릅니다. "겁내지 말자. 기죽지 말자. 그냥 할 일만 하자. 지긋이 내 몫을 하면 된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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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엘리자베스 길버트. 2009년 2월 글로벌 테드 특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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