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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집을 떠날 때, 그건 그냥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듯
자연스러운 거였어요. 세탁소 앞을 지나갈 때 다림질 냄새를
맡거나 두꺼운 겨울코트들을 뒤집어 햇볕에 말리는 풍경을 보면
집 생각이 나요. 설거지가 끝난 부엌, 이제 막 닦은 마루,
물로 씻어낸 현관 바닥, 신선한 구두약 냄새가 나는 신발장,
바짝 마른 빨래들, 방금 갈아낸 날이 선 부엌칼, 삶아낸 행주와
걸레들, 익숙한 청소기, 목욕탕 타일의 촉감, 서랍 속의 새하얀
속옷들, 양념이 가득 담긴 투명한 그릇들, 딸아이의 운동화,
아들아이의 자전거, 아이들의 살냄새와 피부의 부드러움,
콧등을 찡그리고 웃는 표정과 웃음소리...
먼 곳에 오면 산다는 것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죠.
때론 삶의 굴욕과 침묵과 시간이 비스킷처럼 부서지던
그 사소함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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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정거장,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 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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