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삶이라는 것이 고단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젊은 사람들이 젊다고 해서 인생의 고단함을 피해갈 수 있다는 생각은 잘 안하고요. 그런데 오랜만에 이런 이야기를 듣는데요. '나이가 젊은데 왜 이렇게 어두운 이야기를 쓰냐?'는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대답도 갖고 다녔었어요. 햇빛이 밝은 거리를 걷는 사람들 중에도 고통이나 번민이 없는 사람은 없는데 내가 보고 싶은 건 그 안쪽이라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뭐 그렇게 대답했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쓴 거였어요. 어쩌면 시를 써서 더 그랬던 것도 같은데 당시 시들은 동시대에 새롭게 출현한 소설들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대체로 어둡고 고통스러웠거든요. - 시인으로 등단한 소설도 쓰는 한강 작가.
가끔 무고하게 피를 흘리곤한다. 상처를 자꾸 만져 짓무르게 하거나 살같이 까슬거리는 걸 간헐적으로 만지작 거리다 결국은 연한 살까지 뜯어내버리는 방식으로. 주로 손가락이나 발가락. 걸을 때 아프고 일할 때마다 씻을 때마다 욱신거리지만 그 아픔은 이유가 있는, 정당한 상처니까 아픈 것이 당연하지. 그러니 넘어지질 말고 손을 베이지 말고 발가락이 파고들거나 빠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보다 배는 아프도록 만져버린다. 그 아픔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듯이. 무료함을 달래는 하나의 방법으로 아픔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내가 꼭 흘려야하는 피에 대해서는 고마움과 안도, 동시에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아픔에는 기대치도 없고 수긍도 없다. 그저 아플 뿐이고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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