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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마음에 들던 파란 손톱이 까져서 벗겨진 손마다 집에 있는 은색을 발라봤더니 제법 마음에 들었다. 오래된 엄마의 가방, 제주도라도 갈까 싶어서 사둔 밀짚모자. 아무 무늬도 없고 그 흔한 리본도 안달렸는데 늘 이런 심심한 것들이 오래쓸 것 같아 마음을 잡아끈다. 모자 같은 거 맨날 쓰는 거 아닌데 한 번쯤 화려해도 그만일텐데.
- 김제. 수류성당. 오래된 성당이다. 어딜가든 엄마 아빠와 있으면 성당마다 들어가보게 되는 것 같다.
- 성당 앞뜰. 붉은 꽃.
- 성당 옆 계단에 꽃이 졌다. 바스락. 져도 어여쁜 것, 살아도 예쁜 것.
- 성당 안 모기장에 비춘 햇살. 어찌나 쨍한지, 빛이 좋았다.
- 오래되고 소박한 성당 안. 고해소가 귀엽다.
- 성당 앞뜰 아마도 사제관 옆 영일홍 이라던가. 아빠 시골 근처에는 이 꽃이 많이 피어있었다. 여름에 피는 꽃인가본데 한 여름에 진한 분홍색인데도 덥기는 커녕 산뜻하기만하다.
- 성모동산 옆 가시나무. 잎이 어찌나 반짝이던지. 벌레든 이슬이든 미끌어져 내릴 것 같다.
- 시골의 흔한 큰 나무 그늘. 여름 나무 그늘, 빛 그림자.
- 나무+햇빛
- 근처에 원평성당. 수류성당은 이제는 작은 성당인 듯 하고 김제에서 조금 큰 성당 인 것 같았다. 빛이 들어오면 스테인드글라스가 늘 예쁜데 미묘하게 여름하고 겨울은 공기가 다른 것 같다.
- 임실에 다 와서 파란 하늘. 사실은 가스가 떨어질랑 말랑 엄마는 애써 여유로운 척, 아빠는 긴장하고 있었더랬지.
- 옥정호. 이렇게 조용한 데가 있었나. 호수의 낮. 이 멋진 경치가 내려다보이는 2-300미터 쯤 쭉 올라와있는 달빛머문펜션. 사장님 내외도 친절하지고 독채에 머무니까 방에서 보이는 풍광도 이만큼 멋지고 조용하고 좋았다. 차가 없으면 접근이 무척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차만 있다면 조용하고 친절해서 또 묵고 싶은 방.
- 산외 한우마을가서 소고기 등심을 사왔다. 굳이 거기까지 안가도 되는데 펜션 사장님이 알려주신 정육점 사장님이 피서를 가신 것 같아서 예전에 간 적이 있던 한우마을로. 내가 크기도 했지만 전같지 않은 쇠락한 느낌의 마을이 애잔했다.
- 소만 먹으면 아쉬우니까 삼겹살도. 숯에 구우니까 기름 쏙 빠지고 고소고소.
- 소세지가 있을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아, 불 남았으니까 소세지 구워먹으면 최곤데!' 했더니 어디선가 나오는 소세지(...) 소세지하고 김치로 마무리. 맛있다고 소맥소맥 고기고기하느라 신나서 모기한테 31번 수혈 T_T
- 밤이 되고 있다.
- 이튿날 아침. 아마도 5시 반 정도.
- 아침엔 사과.
- 핑크색 하늘이 호수에 물든다.
- 해가 뜨려고 검고 붉고 파랗고.
- 늘, 언젠가와 모티브 겹치는 이 사진들.
- 좀 더 너른 마당 앞으로 갔더니 무지개가 떴다. 간밤에 자느라 몰랐는데 비가 왔던 모양이다.
+ 김제, 임실.
+ 아빠 엄마 철이 나의 오래간만의 여름 여행 첫 날이었다. 얌전한 철이와 함께 날씨도 길도 잠자리도 밥도, 모두의 기대치보다 순탄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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