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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걸 좋아해서 노트 욕심이 좀 있는 편인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자주 사느냐, 또 그렇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사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가지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일본에서 돌아오던 해에는 지현언니, 금남언니가 그해 처음으로 나왔던 빨간 몰스킨을 사주었고 그 다음해에는 생일 선물로 미리 꾸냥와 빛나에게 몰스킨을 받았던 거 같다. 그 다음 해는 어땠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언젠가 한 번은 새로나온 문구 회사의 가볍고 쫙 펴지는 회색 다이어리를 샀었고 작년은 아마 안샀던 거 같다. 워낙 이 업체 저 업체에서 다이어리를 많이 찍어내니까 그 중에 괜찮아보이는 걸 챙겨두다가 여러 명에게 주었는데도 이거 저거, 작은 거 큰 거 집 꺼 여러 개를 쓰다가 하나도 제대로 못 썼던 것 같다. 

 내게 소중한 건 제 값을 내고 사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가지로 많은 것을 받았던 위치에서 선뜻 내려올 때는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소중한 것을 모두 다 소중하게 다룰 시간이 없지 않았나..하는. 물론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잘 쓰고 있는 것들도 많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없어질테니까 더욱 더 심플하고 미니멀하게, 최소한도로 내가 필요한 것만 사고 지니는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회사를 옮기고 4개월 짼데 서점에서 책을 한 권도 안샀다. 정신님이 프리마켓을 열어서 이태원에 방문해서 산 두 권은 제외! 이미 절판이라 서점에선 구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반값으로 받았으니까. 나올 때 들고나온 많은 책들을 보면서 책임감이랄까, 이 녀석들 다 읽을 때까지는 새 책 사지 말아야지 했는데 그러다보니 책을 안읽게 되는 경향도 있는 건 단점이지만 정말로 한 권을 못사고 있다. 내 작은 몸과 머리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체감했다. 집에 있는 이 책 저 책 들춰보게 되는데 주로 읽었던 책을 또 읽고 안읽은 책에는 손이 잘 안간다. 이상하게 새 옷도 사온 다음 날 너무너무 입고 싶어지는 옷은 오래되어도 잘 입는데 사고나서 다음 날이나 곧바로 안입는 옷은 멀쩡하고 예쁜 새 옷인데도 잘 안입게 된 채로 오래된 옷이 되어버리는 것 처럼 책도 맨 처음 내 마음을 끄는 아이들은,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내 손을 타는데 그렇지 않은 힘닿는데까지 끌어모아왔던 몇 박스의 책들은 이렇게나 많은 자리를 차지 하고 있다. 나라는 여자, 달려라 아비 같이 중간에 끊어졌던 책을 이어 읽기도 하는데 참 좋다. 

 아, 올해는 위즈덤 김하늘 대리님이, 아니면 조성기 팀장님이? 선물해주셨던 것 같다. 회사에서 영업비로 전체에게 돌렸던 것인데 몰스킨 말랑 커버 검정색을 쓰고 있다. 나는 아주 잘 쓰고 있다. 그리고 받았던 어떤 선물에 비해서도 너무너무 좋았다. 그나저나 뭐했다고 11월이지 싶은 기분이 코 끝을 스치자마자 스타벅스에서는 2014년 다이어리를 팔고 있다. 내년에는 어떤 다이어리를 쓸까 고민할 틈도 없이 요즘엔 스타벅스를 자주가니까 도장 열심히 찍어서 받아야지!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스타벅스 별 리워드의 노예가 되어서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다. 흐흐흐흐. 게다가 내가 괴로워하는 시즌 음료는 사내우정 친구들이 채워주었고 나머지도 그럭저럭 잘 되서 이제 4잔이면! 11월 안에 가능하겠어! 12월부턴 계획적으로 살아야지?! 느낌표의 남발.

 이것은 마케팅도 훌륭했지만 마케팅은 그렇다쳐도 두유가 없었다면 그렇게 됐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게 다 두유때문이야. 여기서 두유란 어떤 의미인가. 많은 사람들은 우유를 먹지만 두유를 먹는 일부의 사람들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얼음값도 받는 스타벅스가 우유 대신 두유를 무료로 바꿔주고 있기 때문이다. 순전히 두유 때문이야. 우리의 클라우드도 이 별 리워드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 있는데, 이 두유와 같은 역할을 무엇이 해줄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생각 나는 건 아마도 업계 순위에서는 100위 바깥,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없지만 일 년에 두 달 정도는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이 있을까, 나머지는 소소하게 늘 그 순위 안에 머무는 출판사들의 좋은, 고운 글이 아닐까. 그 브랜드와 그 작가와 그 감성.  

 그래서 나는 올해 베이지색으로 정했고 큰 걸로 받을까봐.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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