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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일기

1에서 6까지

김곰곰 2015. 6. 10. 03:01


1. 그런 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설명할 순 없지만 그냥, 단번에 슉 하고 오는 것.


2. 많은 말을 하고 나면 어쩐지 나라는 인간 자체가 가벼워진 느낌이 드는데 이 기분은 좋지 않은 가벼움이다. 우울까진 아니고 차분해진다. 침착해지는 거 같기도 하고 조금 서늘한 인간이 된다. 내뱉었던 많은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를 이해시키고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너무 많은 걸 설명하고 싶지 않다.


3. 불안을 없애기 위해 구체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좋은 상태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이 과정 없이 치유는 없지만. 내가 컨트롤, 해결할 수 없는 범위는 꿈까지도 불안하다. 불안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평범한 매일의 나를 잘 관찰하고 분석하거나 반쯤 정신을 놓고 사는 방법 밖엔 없다. 후자는 나를 지켜봐줄 엄마나 거울같은 배우자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을 때 강한 불안을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 ㅡ 반대로 말하면 엄마와 있을 때는 큰 불안을 느낀 적이 별로 없다, 이거 유기불안인가 ㅡ 결국은 아무 일도 없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4. 예전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럴 때면 할머니가 보고싶어진다. 기억이란 꽤 영원하지만 잡을 수가 없어 아득하고 체온을 느낄 수 없다는 현실감에 압도된다. 다시는 볼 수 없다. 암담하다. 할머니가 아픈 동안 나는 내게 중요한 일과 급한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나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자주 생각했다.


5. 엄마는 엄마만 할 수 있는 일, 엄마에게 중요한 일에 투신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엄마의 단호함, 그걸 기다려주고 받아주는 아빠의 단정한 인내심은 정말로 나이가 먹어갈 수록 존경하게 된다. 아빠의 장점은 쓸데 없는 일을 꾸준히 하는 어른이라는 것. 여전히 책을 열심히 읽고 혼자 그림을 그리고 붓글씨도 쓰고 친구들과 옛날 얘기에 웃는 아빠가 너무 좋다. 아빠가 친구들과 에피소드를 얘기해주는 주말 저녁은 기분 좋고 재미있다. 아마도 결혼 전 주말은 늘 그런 분위기로 기억될 거 같다. 엄마 아빠가 있어서 정말로 행복하고 든든하다.


6. 여러가지 사건과 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없이 몇 해를 지나온 것 같다. 빨리빨리 가는 방식은 놓친 것에 대해 내게 불안감을 준다. 삶의 방향과 태도에 대해서 뒤로 가기 버튼을 몇 번이나 누르면서 고민해야 하는 때. 천천히 그리고 매일매일 지겨워질 때까지 책을 읽고 소일하면서 생각해보고 싶다. 일단, 무조건, 우선, 앞으로 같은 방식으로도 살아보았으니 왜, 나중엔 같은 걸 곱씹고 되새기면서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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