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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욕이 없지는 않지만 그다지 많은 편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지나고 보면 언제나 쓸데없이 많은 걸 끌어안고 살고 있다는 생각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물건을 사곤 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신랑이 패드를 산다길래 나도 책 열심히 읽고 공부할지도 모르니까 하고 덥썩 샀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겨울이 온 줄 알고 한국에서 부랴부랴 온수매트랑 난방텐트도 샀다. 옷의 가짓수가 없어서 외출복을 잠옷으로도 입었더니 빨래를 너무 자주해야하는데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나 들어오니까 볕이 좋을 때 빨래를 말릴 수가 없어서 곤란했다. 그래서 나 잠옷이요 하는 겨울 잠옷도 샀다. 바다에 가서 물놀이 하는 사람도 많지만 누워서 책 읽고 쉬는 사람도 많아서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짐이 많아서 버리고 온 돗자리도 아깝고 사려고 마음 먹었는데 여즉 못샀던 비치 타올도 눈에 걸리는데 겨울이라고 세일을 많이 하길래 또 샀다. 이렇게 꼭 필요한 것만 세일해서 참 잘 사서 기분이 좋은데! 언젠가 또 짐 쌀 생각을 하면 이 기쁨은 다 짐이 되려나..


우리가 집에 없는 시간에 택배가 오기 때문에 우체국으로 찾으러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일은 바쁜 날이라 못가고 금요일이나 가야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글쎄! 주인 댁 할머님이 한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셨는지 택배를 받아주셨다. 하아, 반가운 택배 봉투. 잠옷이랑 수건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주문하고는 잊고 있었던 전자 기기들이 와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온 전자 기기가 반갑다. 책을 읽고 싶었으니까. 


작년엔 정말 책을 안, 못 읽었던 거 같다. 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몇 권 읽었는지 뭘 읽었는지 정리하곤 했는데 작년엔 그것도 하질 못했다. 읽은 게 없어선지 정리를 안해선지 정말로 기억이 안난다. 책을 읽는 행위는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걸 오래 읽지 않고 다시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조용한 시간, 집중하는 시간, 나에게 돌아갈 시간이 필요한 데 그걸 하기에 가장 적합한 일이 책을 읽는 일이다. 회사를 그만두면 한 몇 주는 집에 박혀서 책만 읽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바쁠 때면 혼자 살았던 조용하고 볕이 잘 들던 4층 집이 생각난다. 그 집에서 보낸 마지막 봄과 여름. 벽은 차갑고 볕은 따뜻하고 양파 새싹과 함께 지냈던 그 곳. 그 집을 좋아했던 것 같다. 지나고나서 그리워지는 걸 보면. 하긴, 지낼 때도 언제나 고마웠다. 따뜻하고 시원했고 사람사는 동네 같았고 옆집에는 좋아하는 제주도 언니도 살고. 중심과 가깝지만 주변이었으며 언제나 조금 먼 것 같은 그 동네. 싸고 맛있는 라떼를 파는 집이 있었고 연애하던 신랑네 집과도 가까웠다. 그 곳이야 말로 정말 혼자 있기 좋은 곳이었고 책을 읽기에는 최고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아쉽게도 그 집에서 주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내내 쳐다봤던 거 같다. 잠도 더 푹 자고 책도 더 많이 읽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때 나는 전반적으로 행복했지만 마지막 즈음엔 정신이 빈곤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당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집을 나오면서 좋은 시집과 소설을 아빠에게 많이 드리고 왔다. 언제든 돌아가면 읽을 수 있지만 당장은 읽을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집도 나는 참 좋아하는데 그 얘긴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여기엔 영어로 된 책이 두 권, 한국어로 된 소설책이 한 권, 만들기 책이 몇 권 있지만 그것 말고 다른 책이 읽고 싶어졌다. 시간이 생기고 나니 다시금 가장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책을 읽는 일이었다. 사람은 잘 변하질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봐야지 하는 일들이 많은데 그것보다 우선으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은 아마도 어머님 집에 두고 온 장 그르니에의 책들. 가장 먼저 산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간이었지만. 그 뒤로도 몇 권을 더 샀는데 아무래도 폰보다는 패드가 좋겠지! 올해는 전자책 사는데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종이책으로 밖에 나오지 않는 책은 조금 더 기다릴 수 밖엔. 짐도 줄이고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구매 이력이 있어서 올해는 몇 권이나 읽었는지도 알 수 있을테니까 천천히 읽어야지. 원피스도 시작해야지! 날씨도 다시 풀린 것 같으니까 얼른 예쁜 비치 타올하고 패드를 들고 바다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 얼른 한국에서 익숙하고 편한 내 옷들이 왔으면.

 


+ 최근에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어깨도 아프고 온 몸이 아프다. 조금 더 겨울이 되면 신랑하고 뜨거운 온천에 가서 한 밤 자고 오는 버스 여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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