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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시드니

160328 : 단정하고 조용하게

김곰곰 2016. 3. 28. 04:53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순수하고, 그분께서는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방패가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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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5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한국에서는 우리 집에서도 엄마에게서만 부활을 느낄 수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미사를 참례하고 전례를 곱씹는 건 엄마 뿐이었으므로. 그렇다고 아빠와 내가 망나니냐 하면 그렇지 않다. 회사에 다닐 뿐이었다. 여기는 나라 전체가 부활절 자체가 휴일이다. 성금요일 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가장 기쁜 일주일 중에 하루인 오늘까지. 늘 이렇게 쉬는지 아니면 주중 편의에 따라 금토일월로 쉬는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집 앞 성당은 언제나 열려있었다. 우리는 금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쉴 수 있었는데 금요일에는 성당에 주말만큼 사람이 가득했다. 어제는 부활이기도 하고, 한국말을 듣고 제대로 알고 감사하고 싶어서 한인미사에 다녀왔다. 신부님께서는 성당에서는 전례력 상 예수님의 부활을 성대하게 축하하다 보니 어릴 때는 예수님이 화려하고 모두가 알게 부활하셨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공부를 하다보니 꼭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성서 말씀에는 무덤에 돌이 사라지고 무덤 안에는 아마포와 예수님을 덮었던 수건이 단정하게 개켜져 있다거 했다. 그 말이 어제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극적인 순간에도 놀라울 만큼 단정하게 수건을 개고 머리 맡에 두고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을텐데 아주 조용하게 나오셨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내 삶에 부활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부활해야 할 만큼 대단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나도 언제나 부활은 화려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아마도 매스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라고 생각하는데 요란하고 시끄러운 배경 음악과 화려한 불빛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내 인생에 그런 건 별로 필요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신부님께서 우리 삶에도 길고 짧은 부활의 순간이 있을 거라고 말씀 하셨을 때 문득, 내 삶에 부활이란 회복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 속에서도 다시금 피어나는 순간, 피어나기 위해 준비하는 인내. 그리고 그 순간이 되었을 때 조용하게 웃는 것. 오늘도 출근 길에 보니 이른 새벽부터 성당에 문이 열려있었다. 집 앞에 성당이 있다는 것 만으로, 그 곳에 문이 열려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


+ 사람은 얼마나 견딜 수 있는걸까. 돈과 치환되야 하는 가치는 어디까지일까?
+ 피로는 건강에 좋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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