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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줄 모르고 펄펄 끓는 보일러를 잠재우고 어제 만들어논 카레로 점심을 먹고 나니 두시가 좀 안됐다. 조금 큰 식물들을 집에 들여야지 하다가 오늘이다 싶어서 함께 집하장에 가서 드라코, 떡갈나무, 극락조를 데리고 왔다. 화분을 사고 분갈이까지 마치고 앞자리를 양보하며 퇴근길 이전에 돌아왔다. 해가 진 이른 저녁에 아무 것도 하기가 싫어졌는데 오늘인 것 같아 집에 있던 고무나무도 두 개의 화분으로 나눠 심어주고, 무럭무럭 자라는 스투키도 새끼를 모아서 작은 토분에, 어른들도 두개의 토분으로 분갈이를 해주었다. 스투키 둘, 고무나무 하나, 알로에 하나, 율마 하나였던 화분이 스투키 셋, 고무나무 둘, 새로 데려온 아이 셋까지 늘었다. 집안이 초록초록. 같이 잘 살아보자. 율마는 향도 좋고 색도 푸릇푸릇해서 아름다운 것이 꼭 오월 같은데 보일러가 고장난 동안 잎은 마르고 잎이 마르기에 물을 잔뜩 주었더니 뿌리는 과습이 온 것 같다. 쳐낸 가지를 물꽂이 해두고 뿌리도 잘 씻어서 그늘에 말려주었는데 흙에 심었더니 살아날 기미가 없어 물에 담궈두었다. 애를 너무 괴롭힌 건 아닌지.
오늘은 많은 일을 했는데 어쩐지 해낸 것 보다는 얻지 못한 것, 잃은 것에 마음이 쓰인다. 아마도 연말이고 게다가 실패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고 있어서겠지. 지금 하고 있는 작은 실패들이 내 인생에 어떻게 쓰이게 될지. 우연히 성공하고, 운좋게 넘어가기 보다는 올바르게 실패한 시간들이 필요한 시점. 노력도 지금보다는 더 했고 머리도 조금 더 명석하게 돌아갔을테지만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섣부른 절망이나 무력에 빠지지 않도록,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왜 복기를 하는걸까? 아마도 그때는 보지 못한 실수를 보기 위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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