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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엔도 슈사쿠

김곰곰 2012. 1. 23. 02:04

살아생전 그는 아무리 고통스러운 경험이라도 인생에서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자주 강조했으며 그것이 그의 철학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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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준코 (남편 엔도 슈사쿠의 [회상] 번역 한국판 출간에 붙여)


 

그러면 마음이 상한 나머지 자기 경멸의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음으로 마음을 얻고자 해도 오히려 마음을 잃어버리는 마음이어라. 잇펜(一遍)

 

선을 행하는 것 못지않게 일부러 악을 행하는 것도 사실 꽤 어려운 일이다. 나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은 큰 악행을 저지르려 해도 대단한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날까지 수없이 작은 악행을 되풀이해 왔지만, 다행히도 큰 악과 손잡고 인생을 망치는 일은 없었다. 나의 소심함과 나약함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된 것이다.

 

 

 

 내가 베푸는 선행이나 사랑이 상대방에게는 매우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는 달갑지 않은 친절일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자신의 사랑이나 선의 감정에 눈 멀어 자기만족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사람을 일컬어 '선마善魔'라고 한다. 사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도 이런 '선마'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경험이 과거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었다.
 나는 그러한 경험들을 되씹어 보면서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자기만족의 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은 과연 명언이라 할 수 있다.
(중략)
 여성들 중에도 선마형이 많은 편이다.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행위를 상대방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음으로 무조건 밀어붙이는 여성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돌진해 오면 상대방은 저항할 힘을 잃고, 두 손을 들게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지나친 사랑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기쁨도 없고, 슬픔 또한 없나니. [마나라존자] 선가의 어록.

 소설가로서 나는 이른바 불가에서 이르는 무명無明, 번뇌 사로잡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마음을 그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비록 가톨릭 신자이기는 하지만 속세에서 죄를 짓고 비틀거리는 남녀에게 더 관심이 가면 갔지, 그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른 성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뿐만 아니라 소설을 쓰면서 이 무명 세계를 깊이 탐구해 나가는 동안 무명 세계 안에 빛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중략)
 그러나 이 모든 형상을 환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에 철저하게 집착하는 삶을 통해서도 '본질 깨닫기'에 이를 수 있다.


 

 

 

, 문학에서만이 아니라 기독교나 불교에서 죄를 범한 사람은 그 죄로 인해 거꾸로 구원의 길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을 통해 믿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죄는 구원과 서로 등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죄는 반드시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범했던 어리석은 짓이나 나에게 일어난 사건들ㅡ그대로 사라져버릴 것 처럼 보였더라도ㅡ도 결코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이에 서로 얽히고 연결되어 내 인생에 실로 깊은 의미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그 어느 것 하나도 헛된 것이 없었으며, 어느 것 하나도 의미 없는 것은 없었던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실버 세대'라는 멋진 단어로 눈가림할 일이 아닌 것이다.

 

 

 

 

 

 

 

 

 

 

 

 

 

 

 

 

 

 분위기에서 직업적인 표시가 심하게 나는 사람을 보면 어딘가 가짜 같은 느낌이 든다. 소설가다운 풍채를 한 소설가가 있다고 해보자.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고 세상 고민은 혼자 다 짊어지고 있는 듯한, 심각 그 자체의 얼굴을 하고 있는 글쟁이는 엉터리임에 틀림없다.
(중략)
 내가 존경하는 한 유명 배우는 남의 눈에 그다지 띄지 않는 수수한 차림을 즐겨 해서, 시골 학교의 교장 선생님처럼 소박함이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이야기를 해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멋이 흠씬 묻어난다. 풍류 아닌 곳에 진정한 풍류가 존재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이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풍류'라는 단어를 때로는 '인생'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 아닌 곳에 인생이 있다."
 인생 운운하면 뭔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극적인 것을 연상하게 되는데, 그러나 어디 극적인 것만이 인생이겠는가. 표면적으로는 극적인 것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평범하고 평탄한 일상적인 노고의 연속, 그것이 우리들의 생활이 아닌가.
 그리고 그곳에서 바로 "인생 아닌 곳에 인생이 있다."라는 말이 성립되며, 인생의 깊은 의미와 신비가 숨겨져 있다. 그 깊은 의미와 신비를 탐구해서 글을 쓰는 것이 작가의 사명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무척 좋아하는데, 최근의 드라마를 보면 점점 더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극'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러나 굳이 그런 것을 가미하지 않아도 인간을 그려낼 수 있다. 그렇게 극적이지 않아도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답다'라든가 '~에 걸맞는'과 같은 말에는 아무래도 가짜 냄새가 난다. 진짜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담담함이 있다.

 


 

인생을 두 배로 사는 법

 

내가 '꽤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채널'이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백여 개의 채널을 돌리면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나는 호기심이 남보다 곱절은 많아서, 지적-정신적 호기심 외에 일상 생활에서도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전자의 내가 엔도 슈사쿠라는 이름으로 문학을 해왔다면 또 하나의 자신, 즉 일상의 호기심이 강한 나는 '능구렁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생활의 여러 가지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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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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