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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방비상태로 아버지의 몸과 그토록 오래 접촉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혜성은 좀 당황했다. 왜, 그 커다랗고 두툼한 손을 홱 뿌리치고 도망가고 싶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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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에게 열 살부터 스무 살까지의 시간은, 요란하게 윙윙거리는 자동차 엔진룸 속에서 고요히 닳아가는 타이밍벨트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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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하다고 깍듯이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게 누구든, 어떤 종교의 신이든, 고맙다는 말만은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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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전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혜성의 경우는 좀더 복잡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설명하지 못할 짜증이 솟구쳐오르는 동시에, 그 짜증스러운 감정에 대하여 본능적인 죄책감이 밀려들곤 했다.

 

 


그녀는 바닥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두 발목만으로는 몸과 정신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은성은 사랑한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걸 일찍부터 깨우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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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잉태된 곶감 씨앗만한 태아를 떠맡기 위해 그들은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했다. - , 불안하고 어설프지만 밖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생의 활기찬 가능성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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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형제관계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은 많았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통장 잔고에 대해 묻는 것보다 그쪽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병명을 듣자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그의 고통이 적어도 엄살이 아니었음이 증명된 셈이었다. 그는 실체 없는 불안에는 도저히 설득당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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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것은 감당키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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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직원이 무심히 내미는 제 골프가방을 보는 순간 고통스러울 정도의 허탈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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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방식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하나뿐인 사람으로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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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유지 역시 자주 부끄러워지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걸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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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없는 자가 제아무리 걱정하고 애태운다 한들 모두 무의미한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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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뱉자마자 후회했다. 왜 필요 이상으로 심술궂게 지껄이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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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동안, 혜성이 잘 지냈는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잘 견뎌온 것만은 확실하다고 옥영은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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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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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는 선배를 보는 것은 기쁘다. 내가 아는 성신여대 출신의 소설가는 정이현씨 뿐이니까. 트렌디한 것도 그 나름의 통찰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싶다. 이것은 나의 바램. 이 책을 읽었을 때 전작과는 다른 관찰이나 노력이 보였다. 뭐 감히 내가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만. 노력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고 발전해나가는 모습으로 보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