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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위로

야릇한 슬픔

김곰곰 2010. 2. 14. 18:15
그가 내 손목을 감싸다가 잡아당겼고, 나는 얼결에 그의 가슴에 안겼다. 그가 내 손을 자신의 바지 가운데 부분으로 가져다대며 말했다. 이것도 줄 수 있는데. 그가 너무 심각하게 말해서 내 입에서 풋,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 손으론 그가 건네준 노트를 들고 다른 손은 그의 바지 성기 부분에 올려놓은 채 나는 야릇한 슬픔에 잠겨 여기보다 더 먼 곳은 없을까?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 바닷가가 그때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면서도.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서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자기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이 실제 있었던 일로 기필코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필요 이상으로 봤다는 걸 강조하면 나는 그 사람의 희망이 뒤섞여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

 이 시간에? (중략) 그때의 우리는 그게 어느 시간이든 서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보다 더 이른 시간이어도 그가 내게 올 수 없는 시간은 없었고 내가 그에게 갈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때의 우리는 언제든 서로를 향해 어서 와, 라고 대답했었다.

 

 

 

-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으니 그 연습을 일찍 해두는 게 좋다고. 엄마가 옳았다고는 말 못하겠다. 나는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으면 함께 있을 수 있는 한 함께 있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니까. 옮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생각이 다른 것일 뿐.

 

 

 

 

 

 

 

 

 

 

 

 

-

어딘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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