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다.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온 지도 어느덧 212일 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쓸 수 있을만큼 한가해서 부지런 한 날들이 성큼 지나가고 그 자리엔 오랜 무기력이 찾아 들어왔다. 겨울을 보내면 그 마음도 다른 곳을 향해 갈까? 최근들어 느낀 감정에 대해서 솔직해 보자면, 대부분의 시간에 거의 아무 생각이 없다. 생각을 하거나 기억을 하는 일에 무감해졌다. 궁금한 것도 별로 없다. 오랫동안 체념하지 못했던 것들에게 완전히 희망을 버렸는데 슬프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불쑥 화가 나는 일들은 있다. 성공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성취와 증명. 내가 하고싶던 일을 해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나는 해내지 못했다는, 아니 시도 하지도 못했다는 패배감에 입맛이 쓰다. 뒤쳐진다는 열등감보다도..
서두르지 않고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길을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사내가 천천히 뒷짐을 지고 걷고 있습니다. 짧은 그림자로 봐서 때는 한낮입니다. 앞서 가는 여인을 뒤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눈에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마음이 보입니다. 그림의 왼쪽은 푸른색으로 남았고 키 작은 들꽃이 피어 있는 길은 오른쪽 끝에서 잘려 버렸지만 사내가 걷는 길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나이 들면 서두르지 않고 늘 저렇게 앞에 가는 사람을 지키듯이 걸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때는 나이 먹는 것이 자랑스러워 생일이 되면 여기저기 소문을 냈습니다. 그런데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인지 이제는 생일을 맞아도 덤덤합니다. 더 이상 뛰지 않기로 하면서부터 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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