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창밖은 잿빛이고, 병원 바깥에서 군고구마 장수의 낭창낭창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군고구마 장수는 낭창낭창한 자신의 목소리가 그걸 듣는 이에게 어떤 기분을 갖게 하는지 깨닫지 못한다. - 오랜 세월을 일이며 인간관계에서 당혹스럽거나 낭패를 당한 일도 많은 이소베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가 처한 상황은 그런 일상의 좌절과는 영 딴판에다 차원이 달랐다. 눈앞에 잠들어 있는 아내가 서너 달 후면 어김없이 죽는다. 이것은 이소베 같은 남자가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건이었다. 무거웠다. -간호사 둘이 신나게 이야기하면서 지나갔다. 그녀들은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병이나 불행과는 전혀 무관한 건강과 젊음으로 넘쳐난다. -깊은 강, 엔도 슈사쿠.
"이젠 싫어. 밤이 되는 게 싫어.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릴 듣는 게 싫어." 검둥이는 가만히 누마다의 얼굴을 보고, 당혹스러운 듯 꼬리를 살포시 흔들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산다는 게 다 그렇습니다.) 검둥이는 그 때, 대답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누마다는 당시의 일을 떠올리고, 검둥이가 분명히 소년인 그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아빤 엄마랑 따로따로 살자고 말씀하셨어. 난 어떡하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빠랑 살면 엄마한테 미안하고, 엄마랑 살면 아빠한테 미안한 느낌이 드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산다는 게 다 그렇습니다.) 검둥이는 그 무렵의 그에게는 슬픔의 이해자이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단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이며, 그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 깊은 강, 엔도 슈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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