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다.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온 지도 어느덧 212일 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쓸 수 있을만큼 한가해서 부지런 한 날들이 성큼 지나가고 그 자리엔 오랜 무기력이 찾아 들어왔다. 겨울을 보내면 그 마음도 다른 곳을 향해 갈까? 최근들어 느낀 감정에 대해서 솔직해 보자면, 대부분의 시간에 거의 아무 생각이 없다. 생각을 하거나 기억을 하는 일에 무감해졌다. 궁금한 것도 별로 없다. 오랫동안 체념하지 못했던 것들에게 완전히 희망을 버렸는데 슬프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불쑥 화가 나는 일들은 있다. 성공이라는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성취와 증명. 내가 하고싶던 일을 해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나는 해내지 못했다는, 아니 시도 하지도 못했다는 패배감에 입맛이 쓰다. 뒤쳐진다는 열등감보다도..
생각해보면 참 많은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깊게, 아니 정확하게는 부정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생각하면서 지내왔다. 나는 늘 염려하고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공포는 오로지 아주 구체적인 죽음과 아주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괴롭힘 같은 것. 매사에 예민하게 생각하고 최적안, 플랜 비를 생각하고 감정을 쏟아붓는 일. 일의 성공이나 실패에 상관없이 언제나 실패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그 자체가 실패였는지도 모른다. 매일 실패하며 살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삶은 얼마나 원만하게 굴러가는지. 그렇게 지나온 수많은 순간들을 뒤적여 바로 잡는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반복하기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기본이 중요하다고 언제나 시험 범위보다 훨씬 더 앞 페이지를 펼쳐서 무작정 책을 읽어가는 밤..
허탈감과 무력감에 빠지기는 했지만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그런 상태는 아니다.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에 대한 흥미를 잃었을 뿐, 뭔가 새롭고 구체적인 것이 나타나면 지금이라도 벌떡 일어나서 달려 갈지도 모른다. -strange days, 무라카미 류. + 지금 나를 표현하는 문장. 이 문장을 찾으려고 옛날 미니홈피를 찾았다. 사실 책 이름도 알고 있었는데. 이 글을 올린 날이 2005년 8월 3일, 제목은 2009년 7월 28일. 난 주로 여름에 무기력해지나보다. 여름에 오는 무기력은 더 견디기 어려운 감정인 것 같다. 나 빼고 세상 모두가 싱그럽고, 비가 오는 날도 있지만 비가 그치면 훌쩍 커있으니까. 나 빼고 그렇게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괴롭다. 못해도 된다고 나를 다독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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