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하나 /일기

매일 실패했던 날들

김곰곰 2015. 12. 6. 03:47

생각해보면 참 많은 것들에 대해서 제대로, 깊게, 아니 정확하게는 부정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생각하면서 지내왔다. 나는 늘 염려하고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공포는 오로지 아주 구체적인 죽음과 아주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괴롭힘 같은 것. 매사에 예민하게 생각하고 최적안, 플랜 비를 생각하고 감정을 쏟아붓는 일. 일의 성공이나 실패에 상관없이 언제나 실패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그 자체가 실패였는지도 모른다. 매일 실패하며 살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삶은 얼마나 원만하게 굴러가는지. 그렇게 지나온 수많은 순간들을 뒤적여 바로 잡는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반복하기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기본이 중요하다고 언제나 시험 범위보다 훨씬 더 앞 페이지를 펼쳐서 무작정 책을 읽어가는 밤. 밤이 깊어도 아침이 올때까지 정작 모르는 것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때. 그리고 그 문제가 결국은 시험에 나왔을 때 처럼. 다 알고도 매번 당하는 일들. 나에게 삶은 늘 그런 실패 같았다. 사실 그런 걸 기록하며 잊지 않고 더욱 골똘해지기 위해서 일기를 썼던 거 같다.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지금도 비슷하게 곱씹고 있는 중인 것 같지만.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하는 가사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가사가 빨래를 하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낭창낭창 나를 지나간다. 봄 바람이 불면 어쩔 수 없어지는 기분들. 그런 종류로 나를 무력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무력감을 느낄 때와는 다르게 매일이 원만한 지금에야 알게된 것들도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모든 일은 피할 수 없다는 것. 내 인생에 백 가지의 나쁜 일과 좋은 일이 일어나야한다면 오늘 그 중에 하나가 일어났을 뿐이라는 것. 그런 일들은 절대 피할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선택과 기다릴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 아빠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는 남자는 아니지만 자신을 위한 최고의 기준을 가진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눈 앞에 일어난 일이 앞으로 내 인생에 얼만큼을 차지할 지 결정하는 것 뿐.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되어갈건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건지, 앞으로 이 일 끝에 누구와 지내게 될지 그런 건 노력할 순 있지만 바꾸긴 어려운 일이라는 것. 이런 이야기를 쓰다보니 내 편인 사람 한 명하고 바보 같은 사람 한 명하고 긴밤 동안 술을 많이 마시고 큰 소리로 헛소리를 하고 또 한 번 실패하고 아침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고 싶어진다. 그 밤을 같이 보낸 한 명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다른 한 명은 모두 잊도록.






'하나 >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 냅두고 논다던가  (0) 2016.04.05
Still There, Still Here  (0) 2015.12.15
  (0) 2015.10.24
깊은 빡침 그 후 아이폰 부활  (0) 2015.10.03
가을  (0) 201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