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간의 마닐라 생활이 끝나간다. 목요일에 옷을 정리하고 오늘은 부엌을 정리했다. 크게 보면 두 파트 밖에 없는데도 어찌나 짐이 많은지. 올때는 26키로그람으로 왔는데 갈때는 더 가벼워야하는데 왜 이렇게 가방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짐이라고 늘어난 건 튜브랑 물놀이 용품, 안경 말곤 없는 거 같은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욕실은 오늘 저녁, 내일 아침 샤워를 하면 샴푸랑 치약이랑 몇 가지를 챙기고 버리면 될 듯 하다. 낭비도 안하고 필요없는 것도 제때 버리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버리기를 한 가득. 매번 이렇게 버리는데도 대체 왜 가방은 무거운걸까. 신랑보다야 많지만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옷이 많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옷은 무거운지. 중요한 건 챙긴다고 챙겨도 왜 매번 다른 가방에 넣어두고 허둥..
내가 미국을 동경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끔씩 집에 돌아와 며칠 머물다가 다시 말레이시아로 떠날 때 아버지의 모습은 기쁜 듯이 보였다. 어머니는 그곳에 여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나는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자가 있든 일을 좋아했든 말레이시아에는 아버지가 가슴 설레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트렁크를 들고, 겐지, 다음에 보자, 라고 말할 때 아버지의 모습이 좋았다. 나도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다음에 보자, 라고 말하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해왔다. - 미소수프, 무라카미 류.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만히 상상해보았다. (중략, 뛰어넘고-) 물론 세상은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라고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 역시 나름대로의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미녀들은 보통 내가 감당할 수 없었고, 돈은 항상 부족했다. 건축 설계는 하면 할수록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가정에는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말 못할 고민이 존재했고, (블라블라, 결론은) 그래서, 다른 것들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많을 거라고 애써 자위한 뒤, 일단 나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도시들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유사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거 같은, 각각의 대륙에 따로 떨어져 있는 세 도시인데다 몇 달씩의 터울을 두고 다녀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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