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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마닐라

160201 : 내일이 마지막

김곰곰 2016. 2. 2. 01:16

3개월 간의 마닐라 생활이 끝나간다. 목요일에 옷을 정리하고 오늘은 부엌을 정리했다. 크게 보면 두 파트 밖에 없는데도 어찌나 짐이 많은지. 올때는 26키로그람으로 왔는데 갈때는 더 가벼워야하는데 왜 이렇게 가방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짐이라고 늘어난 건 튜브랑 물놀이 용품, 안경 말곤 없는 거 같은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욕실은 오늘 저녁, 내일 아침 샤워를 하면 샴푸랑 치약이랑 몇 가지를 챙기고 버리면 될 듯 하다. 낭비도 안하고 필요없는 것도 제때 버리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버리기를 한 가득. 매번 이렇게 버리는데도 대체 왜 가방은 무거운걸까. 신랑보다야 많지만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옷이 많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옷은 무거운지. 중요한 건 챙긴다고 챙겨도 왜 매번 다른 가방에 넣어두고 허둥거리고 비밀번호는 왜 자꾸 까먹는지 모르겠다. 


왜 선생님들은 일기를 쓰라고 했을까? 적어놔봤자 읽는 사람도 없고 언제나 비슷한 생활일 뿐인데. 하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에는 일기만큼 좋은 게 없다는 걸 느낀다. 최근의 매일 써온 일기를 보면 예전처럼 가끔 문학적이라고 느끼는 구절도 없다. 글과 삶에서 어깨에 힘을 빼고 조금 더 단순하고 정직해지고 싶었다. 남이 한 말에 지극히 공감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를 적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은 많이 읽되 자신의 글을 써야한다고 했다. 전에는 아무리해도 그게 힘들었다. 더 멋있는 말을 많이 붙여서 글을 쓸 수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이 읽기만 했던 때, 남의 글을 바탕으로 생각했던 때의 글보다 멋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정직한 초등학생 같은 매일의 기록이지만 최근 2년 정도의 글을 읽어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다. 


내일이 되면 또 몇 가지 중요한 건 놓치고 가고 몇 가지는 중요하지도 않은데 가방 깊숙하게 넣어 낑낑 거리며 가방을 들고 가겠지. 그리고는 새로운 곳까지 비행기에서 다리를 웅크리고 불편하게 가게 될 것이다. 비행기에서의 비좁음이 언제나 그 날 밤 새로운 곳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자는 당연함을 감사하게 여기게 해주는 듯 하다. 새로운 곳으로 가는 두려움은 없지만 여기에서의 생활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 같은데 떠난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온 건 아니었지만 애당초 너무 목표가 없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 건 내일 비행기에서 시간이 많으니 차분하게 생각해봐야지. 지금 더 중요한 건 내일 공항에서 허둥거리지 않는 것! 그리고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때 푹 자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