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의학이란 부재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부재. 내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돌아와 식은 음식을 데워 먹었다. 내가 열 살 때, 아버지는 우리(열네 살, 열 살, 여덟 살짜리 남자 꼬맹이들)를 데리고 맨해튼 북쪽의 오밀조밀하고 풍족한 동네인 뉴욕 주 브롱크스빌에서 애리조나 주 킹맨으로 이사했다. 킹맨은 두개의 산맥에 둘러싸인 사막의 계속 도시였고, 외지 사람들은 대개 다른 도시로 가다가 기름이나 넣으러 들리는 곳 정도로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의 태양이나 저렴한 생활비(아들들을 전부 원하는 대학에 보내려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아니면 심장병 전문의로 개업할 수 있는 기회에 이끌렸을 것이다. 그날 밤, 어머니는 침대에 홀로 누워 흐느껴 울었다. 빈약한 학교 제도..
- 사람들은 시간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에 의해 변화되는 것이다. 인생은 자신의 변화되는 모습을 되풀이하여 보여주는 시리즈의 연속물이 아닌가? - 사실 나는 미인들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이야기꾼들이다. - 나는 환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환상은 있는 것이다. - 나는 어떤 세계를 소유할 때 그 세계를 황폐화시키지 않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 예술은 당신이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세상이다. Art is anthing you can get away with. - 때로는 삶에서 비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것은 마치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무감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 그 때가 은색에 대해 생각하기에..
좀 더 실용적으로 살 걸, 하는 사람. 본 적 없지만 아마도 없을 거 같다. 조금 더 즐기고, 조금 더 강한 말로 하면 조금 더 인생을 낭비하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과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했겠지. 싫은 걸 조금도 참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싫어하는 걸 겨우겨우 참아가면서만 살지 않기를. 인생에 더 많이 이야기 거리와 짙은 경험,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맞이할 것. 두 팔 가득 뻗어서.
2009년 5월 2일 종일 집에서 독서, TV, 아내와의 대화로 소일. 조용하고 기분 좋은 5월의 초여름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생활에 특별한 고통이 없는 것이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아내와 좋은 사이라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제 머리와 마음으로 느끼고 감사할 수 있는 노년, 늙음과는 어울리지 않도록 푸르른 5월의 초여름에 쓰여진 글이라 코 끝이 찡하다. 좋은 사람으로 살다가 늙었을 때이건 지금이건 행..
당시에는 삶이라는 것이 고단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젊은 사람들이 젊다고 해서 인생의 고단함을 피해갈 수 있다는 생각은 잘 안하고요. 그런데 오랜만에 이런 이야기를 듣는데요. '나이가 젊은데 왜 이렇게 어두운 이야기를 쓰냐?'는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대답도 갖고 다녔었어요. 햇빛이 밝은 거리를 걷는 사람들 중에도 고통이나 번민이 없는 사람은 없는데 내가 보고 싶은 건 그 안쪽이라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뭐 그렇게 대답했었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쓴 거였어요. 어쩌면 시를 써서 더 그랬던 것도 같은데 당시 시들은 동시대에 새롭게 출현한 소설들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대체로 어둡고 고통스러웠거든요. - 시인으로 등단한 소설도 쓰는 한강 작가.
나는 블로그에 8할은 책 이야기인 것 같은데 유입수 1위 키워드는 '코스트코 유산균', 2위는 '처녀자리'.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책을 팔아보아도 그렇고 블로그도 그렇다. 뭐든 해보기 전엔 그럴까, 하는 추측이지만 해보면 알게 된다. 뭐가 먹히고 뭐가 안먹히고 뭐는 좋은지 뭐는 왜 안좋은지 뭐는 좋은데 왜 안되는지 그런 것들. 아마 처녀자리를 검색한 사람 중에 몇은 가끔 오거나 다른 글을 읽기도 하겠지만 코스트코 유산균을 검색한 사람이라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확률이 클 것 같다. 유산균과 김연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희미하니까. 잘 없으니까. 하지만 김연수씨나 천명관씨가 어느 날 대장님 걱정을 하다 유산균을 검색 도중 여기까지 흘러올 수도 있다. 그런 게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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