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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나는 소설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는 걸까요? 나는 소설이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따라서 실패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이들, 아직도 부자가 될 희망에 들떠 있는 이들은 소설을 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누군가는 그 구원 없는 실패담을 읽는 걸까요?


나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불행이 단지 부당하고 외롭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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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부르스리, 천명관. 위즈덤하우스. 


군데군데 쌈박질 장면은 후루룩 넘어가도 좋으니 큰 맥락으로만 보면 여자분들도 잘 읽을 수 있다. 제목만 보고 생각했던 내용과는 사뭇 다른, 너무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정말로 후루룩 후루루룩 읽을 수 있다. 손으로 치대서 쫄깃하고 먹을 수록 감칠맛 나는 조금 두껍고 울퉁불퉁한 손칼국수 같은 소설.


+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게 된 때가 언제부터일까. 어릴 때는 제발 이 아이가 얼른 한글을 깨쳐서 혼자 책을 읽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할만큼 매일 밤 책을 읽어달라고 졸라댔다고 한다. 기억에 없으니 모르지만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초등학교 때는 책을 읽지 않았다. 미혹하게도 전집을 사면 준다는 장난감 같은 것에 현혹되기도 하고 그래서 필수 도서라며 아빠가 삼국지 같은 걸 사다두기도 했지만 그때는 책을 전혀 읽지 않았다. 책에 둘러쌓여 있었지만 읽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자꾸만 학교에서 이거 읽어라, 하면서 글짓기니 독후감만 쓰라고하니 그게 싫었던 것 같다. 중학생이 되고나서는 사생대회, 독후감대회 그런 것들이 전만큼 없이 학습을 위한 공부를 하고, 그걸 얘기하다보니 자연스레 이제 책을 좀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된 작가는 요시모토 바나나와 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씨 이야기하고 키친을 읽으면서 꼭 읽어야할 한국이나 외국 고전을 건너뛰고 성인 단행본을 계속 해서 읽어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읽으라는 책이 아닌 책을 읽으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읽고 싶어했는지에 대한 고민이 맞물려서 계속 읽었던 것 같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책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던걸까. 아무튼 그 즈음에 처음으로 외로움이니 사춘기니 하는 것도 왔을테고 무척 무뎠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좋아한다, 싫어한다는 감정을 느끼면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고 그러면 내 옆에는 누가 있을까, 있긴 할까, 있든 없든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거의 세상의 모든 인류라는 것.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걸 깨닫고 또 깨닫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