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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일기

2013 나의 한해

김곰곰 2013. 12. 30. 02:54

매일 매일 성실하게 지내온 것 같은데 날짜가 끝을 향해 갈수록 뭐랄까, 시험범위가 너무 많아서 오늘 밤 안에 도무지 못 끌낼 것 같아 초조한 기분이 든다. 그럴 때 일수록 차분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지. 그리고 뭔가 부정적인 기운이 더 많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니만큼 말도 조심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 때면 역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늘 조심해야지. 올 한해 꽤 많이 퍼져나가고 뻗어나갔던 것 같지만 결국은 다시 웅크러드는 기분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술 대신 커피나 담박한 밥. 더욱 더 맨정신. 맨얼굴의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거리를 두고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들. 

끝내지 못한 책이 많고 읽은 책도 많은 것 같은데 정리를 못했다. 내 손을 떠난 일들이 몇 가지, 아직 시작하지 못한 일들이 몇 가지. 그러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책망하거나 고민하지 않으려고 한다. 

올 해 변화가 있었던 것은 첫번 째는 이직. 두번 째도 이직. 회사를 바꾸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또 중요한 일이었고 하나의 큰 기점, 변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세번 째는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진 것. 더불어 결혼에 대해서도 조금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초연해진 것. 워낙에 결혼하고 싶어했던 타입ㅡ이런 걸 타입이라고 하긴 좀 이상한 거 같지만ㅡ이라 초연해져도 남들보다 그 원함의 정도가 클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면 많이 바뀌었다 싶을 정도로 덤덤해졌다. 그런데 이 그래프가 지금보다 더 상승한다면 곤란해지지 않을까? 나이와 반비례하는 결혼에 대한 호감도라니 노처녀가 되기에 딱 좋은 조건이 아닌가. 

아무튼 혼자 지내는 것이 정말로 편안해졌다.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이 그 자체로 내게 굉장히 큰 안정감과 위로를 준다. 어쩌면 혼자 있는 게 좋은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조용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함께 있더라도 완전히 고요할 수 있다면 함께 지내는 것도 문제 없을 거 같지만 혼자가 아닌 시간과 공간에서 완전하고 완벽하게 조용하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하고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때 안할 수 있는 자유가 극대화되어있는 지금, 아니 그 자유 밖에는 없는 지금. 

네번 째는 음악을 많이 듣게 된 것.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업을 제외하고 제일 많이 한 건 아마도 책을 읽은 일 같은데 올해는 책보다 더 많은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뭐 수치로 확인된 건 아니지만 느낌이 그렇다. 음악을 가까이하기가 이렇게 오래 걸렸다. 시간을 들여 많이 들었던 것은 주로 말이 없는 소리들. 피아노, 바이올린, 그 밖에도 뭐라도 연주곡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는 재즈. 그리고는 언젠가 들었던 한 곡짜리 유행가들. 

다섯 번째는 일의 범위가 확장된 것. 번역/어떤 책을 번역해서 낼 것인가에 대한 기획 참여/윤문을 포함한 편집자로서의 역할. 더불어 번역 장당 페이가 조금 오른 것도 내게는 기분 좋은 일.

너무 많은 말을 했고, 만족감도 컸지만 그만큼 들 떠 있는 기분이었던 것이 내게는 불안함같은 걸로 돌아온다. 나의 감각을 믿고 더 좋은 사람이 되서 무언가를 찾아보자고 확신하면서 다독였지만 한 번씩 이렇게 책임감의 무게로 오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언제나 나는 내 안으로 집중되고 침잠하는 것에 더 많이 마음을 써야만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일에 대한 책임감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감까지 너무 부담가지지 말자고 생각한다. 물론 잘 해야하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지 책임 져야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열심히, 그리고 선한 마음으로 행동해야지. 결과에 대해서는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부주의함으로 누군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지. 그게 내가 조심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하는 건 얼마든지 괜찮지만 서둘러서 그르치는 것도 여기에서는 안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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