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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은 두 시간 동안이라고 했다.


이제 태오는 그러지 않았다. 유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만한 시기가 지났다. 기민하고 명랑하고 낙천적이던 대화가 완전히 사라져버렸지만 서로를 향해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종종 혐오감이 태오를 휘감았다. 평화로이 주고받는 짧은 말에 더러 무기력해졌다. 








그러면 경제규모를 줄여야 하는 모든 가정이 그렇듯 유진도 태오에게 막연한 적의를 품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유진은 무능한 남편과 살아야 하는 침울한 상황을 아직 겪지 않았다. 






듣기 좋으라는 소린 줄 아는데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 말고도 많은 얘기를 해줬다. 아이가 자주 깨는 건 감성적으로 예민해서인데 그건 예술적 재능이 있다는 얘기다, 심하게 낯을 가리는 것은 시각 인식력이 발달했다는 뜻이다, 나중에 키도 크고 엄마를 닮아 예쁘게 쌍커풀도 생길 것이다,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질 것이다 등등. 의사의 격려 덕분에 유진과 태오는 자신들이 잃어버린 모든 가능성을 아이가 품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태오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희열에 찬 한 시절이 자신에게서 완전히 지나가버렸음을 깨달았다. 아파트로 이사 올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태오와 유진은 드물고도 벅찬 기쁨에 사로잡혀 있었다. 유진이 고른 옅은 베이지색 커튼은 빛을 받으면 물결처럼 반짝거리며 빛났다. 커튼을 젖히면 마루 깊숙이 햇살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제 그런 빛은 없었다. 














유진은 과학관 일을 좋아했고 전시를 치러낸 후 관장의 평가와 대중의 반응에 민감했다. 휴직 기간에도 일을 했다. 




어떤 유의 대답을 바라지 않는다면 질문해서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재미로 질문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었다. 








바람은 부는 방향이 바뀐 후에야 정확한 풍향을 알 수 있다고만 했어요. 웃기지 않습니까? 내가 다시 물어보니까 등압선을 보면 풍향을 짐작할 수는 있다고 얘기해줬어요. 확신할 수 없지만 짐작할 수는 있다고 말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짐작할 뿐이라고요.





아마도 함께 사는 동안 성대수술을 한 동물들처럼 묵묵할 것 같았다. 침묵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었다. 간혹 생활의 소리들이 끼어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결코 할 수 없는 게 있었다. 팔로 감싸안으면 가슴에 꼭 맞게 들어차던 느낌. 아이를 안고 있지 않는데도 재울 시간이 되면 팔이 저릿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몸의 기억은 시간도 감당하지 못했다. 아이가 생각날 때마다 누워서 자는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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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순, 편혜영. 2014 이상문학상 수상집. 대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