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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자주 읽게 된 것은 열입곱 살 무렵부터였습니다. (중략) 일본 문학에서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나 나쓰메 소세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도 한때는 자주 읽었습니다. 그중에는 어려워서 도중에 내던진 것도 있었습니다만, 점차 '문학'의 세계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그럴 때 만난 것이 아쿠타카와의 어떤 말이었습니다.


인생은 한 통의 성냥갑과 닮았다. 중대하게 취급하면 바보 같다. 중대하게 취급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


확실히 인생을 소홀히 취급하면 사람을 휩쓸리게 하는 재앙을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을 너무 소중한 것으로 생각해 겁쟁이가 되는 것은 그만두자고, 그 말을 만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가둔 껍데기에서 나가자고 말입니다. 이 말로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실제로 문학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에는 일종의 '언령'이 있어, 자신이 소설의 무대로 비집고 들어가기도 하고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고, 역으로 19세기에 살았던 사람이 이쪽 세계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간다를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저쪽에서 다가온 낯선 남자가 갑자기 나를 때려눕혔다." 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는 랭보와의 만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만, 아쿠타카와의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에 나오는 경구가 제게 바로 그런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 최근에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을 다시 읽고 느낀 것은 '문학'이라는 것은 신에게 가장 가깝기도 하고 신에게서 가장 멀기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 우정, 돈 삼라만상 등 다양한 것들을 둘러싸고 인간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그려 가는 것이 문학입니다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암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다지도 탐욕스럽고 고독하고 슬프고 추악한 것인가 하고 절망적인 기분이 듭니다만, 그 한편으로 인간의 숭고하고 자비심 깊고 아름다운 일면도 그려져 있습니다. 신에게 가까운 것과 신에게서 먼 것을 항상 이율배반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이 인간이고, 그런 인간의 본질을 그리고 있기에 문학은 문학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문학을 읽으면 뭔가 답을 얻을 수 있느냐 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문학을 읽는다고 해서 지성이 쌓인다거나 인간성이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문학은 읽으면 읽을수록 고민이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문학을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그건 아마 책과 대화를 하면서 비대해진 자기로부터 또 한 사람의 자기를 발견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일겁니다. 자신이 안고 있는 양면성에 대해 생각한다거나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이 사색함으로써 거듭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학은 그 계기를 주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와 같이 꽉 막힌 듯한 시대에는 그러한 자기 내부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는 '무엇을 위해?'라는 의문에 "시대가 공허한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좀 더 솔직한 인간성을 지닌 사람의 경우 그러한 사태로 인한 모종의 마비 작용은 거의 피할 수 없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가 자명하지 않은 시대는 젊은이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목적이 확실했습니다. 가난했으므로 하여튼 열심히 일해서 풍요로운 삶을 손에 넣자는 목표가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하며 멈춰 서서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미 물질적으로 충족되어 있고 문화적으로도 나올 게 다 나와 버렸으니 그것을 고쳐 만들거나 반복할 뿐입니다. 저는 이를 '에피고넨(epigonen, 아류)의 시대'라고 부릅니다만, 모든 것이 정점에 달하고 만 지금,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아내기란 어렵습니다.
끔찍한 이야기입니다만, 어떤 의미에서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은 '전쟁'인지도 모릅니다. 전쟁을 하게 되면 그런 고민은 싹 날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절망의 선택입니다. 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이런 시대이므로 더욱더 문학과 마주하고 고민하며 스스로 답을 이끌어 냈으면 합니다.
어떤 책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과의 만남은 달라지고,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책과의 만남도 달라집니다. '어떤 책과 만났느냐'가 당신의 사람됨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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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책자, 강상중. 사계절.




+ 무엇을 위해 사는가, 에 대한 질문을 아무리 고민해도 찾기가 어려워서 내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존재를 생각해낸 게 아이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내 배에서 열 달을 키워내고 태어나고 보호해야 하고 잘 키워야 한다. 아무리 많은 고민이 있어도 그 아이를 밥먹이고 입히고 씻기기 위해서는 고민할 여지가 없을 것만 같다. 그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대상이 사랑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내 생각이 이른 것이 아이, 그래서 결혼을 갈망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언제나 이 불확실한, 고민이 많은, 결국은 반복되는 시간을 지나가고 싶었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나는 조용히 책을 읽는 때가 많았는데 아무리 나 같은 사람을 만나도 실제 인생은 달라지거나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고민과 절망이나 희망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줄어들었다. 설사 그게 기쁨이라고 해도. 그런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