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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일기

즐거운 나의 집

김곰곰 2015. 1. 17. 02:07



사는 곳을 참 여러 번 옮겼는데 그때마다 기억에 남는 공간, 풍경이 있다. 정릉의 기숙사에서는 초록이 잘 보이는 방충망이 없는 직사각형 창문이 좋았다. 빨간 벽돌 집이었는데 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편에 이층 침대. 내가 2층을 쓰고 1층은 지금은 만나지 않게 되버린 지연이. 누으면 천장이 제법 가까웠던 기억. 방문에서 정면에는 책상과 창문, 그 왼편 뒤로는 붙박이 같은 빨간 갈색의 옷장. 이름을 잊어버린 수녀님. 한 번은 수녀님 방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마디는 기억에 아주 깊게 남아있다. 너무 많은 눈물은 눈앞을 흐리게 한다고 하셨다. 많이 울고 털어내고 그러나 너무 자주 많이 울면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요지의 말씀이셨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울 수 있는 만큼 울고 앞으로는 조금만 울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 시점을 기점으로 난 정말 자주, 많이 우는 여자에서 이제는 거의 울지 않는 여자가 된 것 같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시 눈물도 많아지고 불안함도 커졌다. 

대원빌라에서는 아주 좁은 방에 침대 앞을 가로 막은 책장이 좋았다. 우유색 반투명 마루 문. 그때는 철이가 한참 온순하고 학교에도 잘 다니던 시점. 그때까지만 해도 둘이 집에 있는 일도 종종, 꽤 있었고 예슬이가 놀러와서 집에서 쉬어가고 그럴 때도 철이와 온화하게 잘 있었다.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예술이가 싸오는 계란김밥이 참 맛있었던 기억. 그 방 침대에서 잠을 참 많이 잤다. 수능도 끝나고 한가했던 기억. 그보다 오래 살았던 3단지 대원빌라는 놀이터에서 빌라로 들어오는 그 좁은 언덕. 붉은색과 회색 벽돌이 엇갈리게 된 작은 언덕에서 정말로 많이 웃었던 거 같다. 나무를 잡고 기절하듯이 웃기도 하고. 106호 였나. 1층인데도 집이 높아서 놀이터가 잘 보였다. 그 집의 옥색 베란다에 숫자나 글씨가 써진 폭신한 매트를 깔아두고 철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시기. 마루에 침대와 티비와 도자기와 큰 장롱을 두고 방처럼 지냈다. 그 장롱 밑에 무언가 들어가서 자 같은 걸로 밑바닥을 휘젓는 일이 빈번했던 초등학교 시절. 복순이라는 고양이를 키웠고 동물이 무서운 철이는 큰 도자기에 고양이를 자주 집어넣었다. 복순이는 냉장고가 있던 반대편 베란다 방충망에 매달려서 엄마가 밥하는 내내 야옹거렸다. 부엌 뒷 편 방은 역시 서재. 문을 열면 왼쪽 벽에는 천장까지 아빠 책이 많았다. 정치 책이나 주간지 월간지, 주간 동아 같은 아주 두꺼운 뭉치같은 책들, 표지랑 중간중간 아빠의 글씨. 그리고 새의 선물 같은 책들. 앞에는 그 당시는 최신형인 486 삼성 매직스테이션 컴퓨터. 할아버지는 좋은 게 있으면 외가 사촌들 모두에게 고르게 그 기회를 주셨는데 교정이 그랬고 컴퓨터가 그랬다. 사용할 줄을 몰라서 가끔 노래방 같은 기능을 쓰고 타자 치는 데 재미가 있었지만 적절히 활용할 줄을 몰랐다. 집안 식구 그 누구도. 그 옆으로는 화장실. 그때만해도 옛날 집이니까 욕조가 있었다. 새파란 색 타일이 있었고 몽유병이었는지 더우면 종종 화장실 타일에 드러누워서 잠을 잤다. 덥지 않은 날엔 화장실 옆 방, 아빠의 맞은 편, 엄마와 철이가 자는 마루의 뒷편 방. 거기가 내 방이었는데 기억나는 건 침대. 아마도 침대랑 책상을 그 즈음에 새걸로 선물 받았던 것 같다. 책장과 책상이 붙은 회색 책상과 하얀 머리가 달린 싱글 침대. 거기서 복순이를 껴안고 자주 잤고 그러다 고양이 곰팡이가 옮아서 고생하기도 했다. 

미원빌라에서는 ㄱ자로 붙여놓아 넓은 책상이 좋았다. 마루가 넓은 3층 집이었는데 크고 넓은 아빠가 어디서 가져온 가죽 쇼파가 자리하고 있었고 저 멀리 티비가 있었다. 그 집에서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에 다녔다. 넓은 마루 저 멀리 직사각형 창문이 달린 부엌에서 엄마가 밥을 했고 그때는 식탁에서 밥을 먹었던 것 같다. ㄱ자로 붙은 책상이 있는 방은 식탁 옆 작은 방으로 베란다를 텄더니 넓어졌지만 추운 바람에 컴퓨터 책상에 앉으면 늘 발이 시렸다. 공부 책상에 앉으면 부엌에서 엄마가 밥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책상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고 과외를 받았고 짝사랑도 하고 첫사랑도 했다. 과외를 할 때 엄마가 과일이나 오무라이스 같은 걸 해줬고 선생님과 친해져서 밥을 먹고 한숨 자기도 했다. 선생님은 엄청 애기 목소리가 났고 입이 큰 착한 여자였다. 선생님의 결혼식에 가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든 아주머니가 되었겠지? 어떤 얼굴을 하고 계실지 문득 궁금하다. 매일 그 이불보는 아니었겠지만 그 방에서는 파란색 이불보를 썼던 것 같다. 이 집에 사는 동안에는 안방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안방은 크고 빛이 잘 들어왔지만 늘 사람이 없는 것 같은 기억. 엄마는 주로 부엌에 있었던 것 같고 아, 그때는 엄마와 동생이 같은 방을 쓰지 않고 철이도 방이 있었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또 다른 작은 방. 그 집에서는 가장 화목이랄까, 표준적인 가정같은 삶이 있었고 반대로 가장 마음 아픈 기억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상하게 가족사진이 아니라 아빠의 독사진이 크게 집에 걸려있었다. 젊고 야망이 가득하던 아빠의 증명사진이 아주 크게, 지금 생각해보면 왠 북한도 아니고. 

그리고 지금 이 집. 현재 살고 있는 집. 2층은 카메라 붉은 빛 처럼 조금 더 젊고 아늑하고 쉼과 꿈이 있는 공간이었다면 4층은 그런 필터가 없어진 공간. 우풍이 좀 있긴 하지만 햇빛이 아주 잘 들고 무엇보다 거의 진공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하다. 터무니 없는 집안 배치로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답답해하지만 현관문이 바로 보이지 않아서 좋은 집. 2층 집은 밤, 여기는 낮. 아늑한 따스함이 있다면 여기는 햇살의 따뜻함, 2층이 눅눅하다면 좀 이상하지만 축축한 기운 뭐 무언가 촉촉도 아니고 물기가 있는 느낌이라면 여기는 빨래처럼 빳빳한 느낌. 

좋은 풍경을 가지고 앉아있고 싶었던 책상이 있는 집에서, 그 시절에 나는 안정되고 만족했던 것 같다. 만족스럽지 않은 길을 걸을 때도 마음 붙일 곳이 꼭 한 곳은 있었는데 대개의 경우, 창밖이 보이는 책상 앞이었던 것 같다. 광주에 살때는 집에 들어오면 좋았다. 그렇지만 그 집 밖, 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괴로웠다. 늘 어둡고 서둘러야했던 것 같은 기억이 많아서 체할 것 같다. 그래도 그 집에서 참 좋았던 건 아침을 알 수 있다는 것, 좋은 나무로 된 바닥이 있다는 것. 학생이었기 때문에 매일 나가지 않아도 되서 낮에 그 집에, 할머니와 있으면서 가끔씩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 할머니에게 아직은 마음의 젊음이 남아 베란다에 꽃이 가득했던 것. 생각해보면 그때였을까, 할머니가 조금씩 늙어가던 시점. 무언가를 포기하던 시점. 아름다움과 생명과 애착을 포기하고 놓아버려서 꽃이 없어지고 베란다에 옅은 거미줄이나 희미한 곰팡이가 쓸기 시작한 때. 창을 두개 넘어서 보이던 창 밖에는 다른 빌라가 보였다. 언덕이 보였다. 물소리가 들렸고 겨울이면 추워서 차에 시동이 바로 걸리지 않았다. 수원 집은 우리 가족의 어떤 기점이 될 수도 있었던 곳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거기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마음을 써도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되고 그래서 지나고보면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아니, 다행할 일까지도 아니지만 뭐 이대로도 괜찮다는 느낌. 선입견을 없애준 집이었고 작고 오래됐지만 참 정갈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같이 있었던 집. 그래서인지 부엌과 자그마한 마루, 큰 베란다 창문 앞에 그보다 더 큰 나무들이 생각난다. 아빠랑 나는 뒤로는 큰 책장을 두고 나란히 책상을 붙여놓고 그 가운데 마지막으로 존재했던 프린터기가 있었다. 아주 갈색 책장이었고 아빠와 내 책이 가득했다. 겨울만 지냈던 건 아닌데 겨울 생각이 많이 난다. 아빠가 좋아하는 상에서 바닥에 앉아서 티비를 보면서 밥을 먹거나 따뜻하라고 이불을 채 걷지 않았던 방. 마루에서 그 작은 상에 붙어앉아 생일 축하 케이크 촛불을 불었고 그때 동생은 살이 조금 빠져있었다. 이상하게도 내 방 대신 옷 방이 있었고 온통 헹거로 둘러쌓인 그 어두운 방에서 잠자기를 좋아했다. 복도에 붙은 방이었지만 우풍이 없었고 먼지는 있었지만 잠이 잘 왔었다. 가족들이 다 나가면 한낮에 안방으로 옮겨가 티비로 영화를 많이 봤던 것 같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를 보고 엉엉 울었던 집이다. 이렇게 죽 생각을 해보니 내 인생에 늘 나와 함께 하는 것들이 정리된다. 조그마한 공간. 방에 비해 넓은 책상, 책, 싱글 침대, 크림색 이불, 스탠드, 창문, 옷장 없이 서랍에 켜켜히 정리되거나 금방 엉망으로 쌓여버리는 옷들. 결국은 그 정도의 물건과 공간이면 내 인생은 충분한 것 같다. 



내게는 조그만 공간이 있으면 된다. 나는 거기서 아침이면 그날의 일을 설계하기도 하지만, 초조하게 무엇을 기다리거나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해 마음이 불안할 때 그곳에 잠시 앉았으면 침착하고 냉정한 자신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리하여 뜻밖에도 지혜로운 생각에 이르는 수가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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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사는 재미. 이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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