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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일기

배고프니까 청춘이다.

김곰곰 2014. 12. 5. 01:41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고 배가 고프니까 청춘이다. 허기. 무언가 먹고 싶고 먹고 돌아서도 생각나고 잊고 있다가도 금새 생기 있어지는 일. 먹어야 힘을 내서 살 수 있으니까 화가 나도 마음이 슬퍼도 헤어져도 우리는 밥을 먹는다. 실제로 좋은 음식은 사람을 치유한다. 아픈 할머니를 보고 오니 마음이 당연히 안좋다. 아무 것도 먹을 힘도 없이 고요한 시간 속에 거친 숨을 내쉬며 누워있는 우리 할머니. 멍하니 있다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왜 할머니는 먹지 않을까. 먹을 수 없는 걸까, 먹기를 거부하는걸까 알 수 없다. 젊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단계, 어떤 과정이다. 원래도 할머니는 많이 먹지 않았는데 아프면서 제일 먼저 그만 둔 게 먹는 일이다. 무릎이 아픈데 걷고 싶으니까 무게를 가볍게 하려고 그랬을까? 왜 그런걸까. 벌써 9월부터 미음이나 죽 외에는 음식을 드시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세상에 좋은 많은 것을 주고 싶은데 후회하고 싶지 않은데 할머니가 아프고 살다보면 바쁘다. 엄마랑 이모는 마음이 많이 아플거다. 사람이 참 안변한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도 제각각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불안과 안심의 경계선에서 웃음과 눈물이 손바닥 뒤짚듯이 반복되면서 아슬아슬하게. 죽을 때까지 꼭 한 번만 다시 읽었으면 하는 책, 노래, 사람, 풍경이 있어야한다. 오랜 잠을 자는 할머니는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인생의 어떤 시절이 가장 행복했을까. 누구에게 상처받고 누구를 상처줬을까. 젊은이 우리 딸이 훨훨 날아갈 수 있게 해주게 하고 말해서 그 남자는 평생 그 말을 넘어설 수도 없었고 짊어질 수도 없게 됐다. 누구를 사랑하고 싶었을까, 무엇이 먹고 싶고 무엇이 보고 싶었을까. 어디든 참 많이 가보고 싶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노래를 듣고 싶을텐데. 이미자 노래를 들려주고 먼 바다에서 붉게 피는 동백꽃을 보면 힘이 날까.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여자의 인생이란 왜 이렇게 가여워지는걸까. 흔적이라고 남은 게 새끼 뿐이라 그런걸까. 나하고는 밥도 자주 먹고 한낮에 멍하니 있기도 자주 했던 할머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달걀말이는 할머니가 해준 파말이. 손끝이 야무져서 뭐든지 맛있게 잘했던 우리 할머니. 그러나 정작 자기를 위해서는 요리하지 않았던, 잘하지만 하기 싫어했던 일. 먹는 것이 할머니에겐 일종의 트라우마가 됐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극성맞은 할아버지를 포함. 천천히라도 좋으니 하루에 5, 10, 20씩 평화롭고 좋아져서 평균만큼 건강하고 즐거워져서 다시 노래도 듣고 여행도 가고 만날만날 새로운 맛있는 음식도 먹고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할머니가 지지 않고 힘내주기를 바란다. 귀여운 우리 할머니 얼른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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