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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일기

1989년 12월 01일의 헌시

김곰곰 2014. 10. 10. 01:44

누군가 나를 위해 글을 써주었다. 그것도 우리 아빠가 나를 위해서. 김소연 시인이 그랬다, 시는 참 좋은 거라고. 소설이나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야기 라는 걸 감지했을 때는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보았는데 글쎄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그런데 자기도 늘 주변의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고 했다. 그런데 글의 주인들은 늘 만나면 하나같이 기뻐했다고. 아, 시는 참 위대한거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헌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멋지구나 생각했다. 아주 옛날에 아빠가 나를 위해서 글을 써줬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생각했다. 늘 왜 생각과 삶을 그렇게 멀리 두고 있을까? 바코드도 2로 시작하는 품절된 옛날 책. 나는 책을 다루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했고 그렇지만 책을 한번도 그저 하나의 물건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덜 좋고 더 좋은 책은 있었지만. 그리고 공연히 공정해져서 내가 일하는 동안 아빠 책이 나왔는데도 모른 척, 아주 적은 부수만 받았다. 생각해보면 그 책을 많이 받아서 아빠를 도와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건 아빠에게 받은 삶의 괜한 꼿꼿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나 나는 그런 걸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날 수록 징글징글하게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닮아있나 하는 구석이 많아서 깜짝 놀란다. 이 모든 것이 돌고 돌아서 내 몸에 휘감겨 있는 것 같다. 너무나 비슷해서 닮고 싶지 않아 정반대인 구석도 있지만 양상은 반대지만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 뿌리가 같다고 해야할까. 


지현이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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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그렇게 거짓말을 하더라도 아무도 신상명세서를 확인해보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확인해보지 않을 형편이라 할지라도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주저 없이 써내려가게 했으며 나는 비로소 허위의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중략)


나는 아내의 생년월일란에 1945년 3월 8일 생이라고 썼으며 내 생년월일란에는 1945년 10월 17일 생이라고 썼다. 내가 쓴 신상명세서를 보더니 아내는 불평을 했다. 

"여보, 뭘 이렇게 써요. 내 생년월일을 1946년 3월 8일 생으로 고치세요."

"아니, 왜?"

"남편보다 7개월이나 연상이라면 좀 이상하게 생각할 게 아니에요?"

"괜찮아."

"볼펜 주세요. 5자를 6자로 고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니까요. 내 참 치사해서. 볼펜 줘요."

"안 돼."

나는 고집을 부렸다.

"이제 처음 내 딸아이의 신상명세서가 시작됐어. 이제 비로소 사회인이 된 거야. 앞으로 수백 장, 커갈 때마다 그것을 쓸 테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





이 글을 보고 나는 밑줄을 그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이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는지도 모를 거다. 아직은 밝힐 수 없는 것들, 어쩌면 끝까지 밝히지 않을 것들. 어쩌면 아주 쉽게 바뀔 수 있는 것들. 그러나 구태여 바꿀 필요 조차 없는 일들. 햇빛 아래 내어놓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닌 것들 때문에 아빠는 자신의 능력이나 됨됨이보다 좋지 않은 평판이나 비판, 또는 그 반대의 기대감에 힘들었을 거다.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무조건 지금 내 안에 있는 것만 내 몫으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결벽은 아빠와 반대되지만 그 뿌리는 같다. 언젠가는, 되도록 빨리 이 마음이 달아나기 전에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행운아다. 엄마와 아빠를 만나서 정말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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