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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마닐라

151125 : e

김곰곰 2015. 11. 25. 17:55

영어는 스펠링만 보고는 그 발음도 할 수 없는 어려운, 비이성적인 말이다. 26글자가 어째서 43개 또는 50개로 발음 되어야하는건지. 하필이면 어려운 말이 전세계 공용어라 살기가 힘들다. 그래도 우리나라 보다는 조금 쉽게, 당연하게 영어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배우는 건 좋은 거 같다. 나에게 영어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고, 얘네들에겐 나보다 쉬운 게 당연하니까 못해도 창피하지 않다. 영어 실력 같은 걸로 사람의 전체적인 능력치에 부가적인 상하관계, 존경이나 후광 같은 게 붙지 않는다고 할까. 영어를 잘하는 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게 그 사람의 훌륭한 점이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영어를 못하면 덜 떨어져 보이는 문화 자체가 이상하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거나 크게 개의치 않고 저런 문화 자체가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남이 못하는 건 상관없지만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 종종 창피했다. 이상하게 영어는 좀 그렇다. 뭐, 아무튼 그런 문화를 벗어나 다행이긴 한데 아무래도 스파르타로 몇 달 굴림 당하면 훌쩍 늘거 같긴 하다.
 영어를 배우면서 지금까지는 몰랐던 것을 몇 가지 알게 되어서 즐겁다. 한국에서는 매너리즘 비슷한 것에 빠져있었으니까. 뭘 봐도 그다지 새롭지 않고 그게 그거 같고, 그래서 평생을 지금까지와 똑같은 방식으로 계속 살아야한다면 재미없는 얘기만 늘어놓는 어른으로 늙게 될 거 같았다. 뭔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경험해야했고, 느끼기 위해서는 배워야했다.
 다시 영어 얘기로 돌아와서, 아직까지 모르면 안되는 것들도 있지만 새로 깨닫게 된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영어는 분명한 단어를 쓰는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세세하게 뉘앙스 별로 분화된 단어들, 그 중에 가장 적확한 것을 찾으려고 하면 정말 말도 못하게 어려워질 거 같다. 어려우니까 가능하면 쉽고 분명하고 짧게 이야기하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나에게 영어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도 이것인데 나는 나름 고급 국어를 쓰는 사람으로 평소에 굉장히 모호한 표현을 즐겨 쓰고 있었던 거 같다. '먹었다, 안먹었다가 아니라 먹긴 했는데 조금 먹었다, 좋아한다, 안좋아한다가 아니라 좋아하는 편이다', '했다, 한다 가 아니라 했던 것 같다' 와 같이. 그러다보니 주어와 동사를 찾기가 어렵다. 너무나 많은 수식구 (영어로 치자면 불필요한 것들) 때문에 주어와 동사가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게 수식을 위한 단어를 머릿 속에서 찾아 헤매다보면 정작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해야하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영어를 말하는 방식으로 사고하고 말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 같지만 이 방식이 학습되면 나는 조금 더 분명하고 짧게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있지 않을까. 정신을 차리고 줄이고 줄여서 꼭 해야하는 말만 하는 사람으로, 수많은 변수 중에서도 언제나 한 가지 소리를 내는 e처럼.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소득은 영어가 싫지 않다는 거다. 숫자보다는 훨씬 할만하고, 영작 같은 건 한 문장도 못할 것 같았는데 하다보니 틀리긴 해도 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듣기는 그럭저럭 잘 하는 편인 거 같은데 역시 문제는 정말로 입이 안움직인다는 것. 이건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발음이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거 같다. 험난하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영어에 노출될테니 점점 더 좋아할 수 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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