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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시드니

160203 : 호주에 온 첫 날

김곰곰 2016. 2. 3. 21:50




너도 나만큼 뭐가 궁금하구나? 


호주에 온 첫 날. 시드니는 얼마나 넓은지 감도 안온다. 밤 12시에 타서 밤을 꼬박 날아서 새로운 땅에 한낮에 도착했다. 특별히 들뜨거나 특별히 두려웠던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난생 처음으로 가는 나라에서 1년이나 살겠다는 생각을 하니 도착이 가까워질 수록 멍하니 바깥을 쳐다보게 됐다. 언젠가부터 비행기 타는 게 힘들어서 복도 쪽 자리를 선호했는데 이번에는 맨 끝 마지막 창가 좌석에 탔는데 참 좋았다. 하늘 위에서 보니 참 산이 많다, 물 색깔이 필리핀하고는 많이 다르네, 집들은 두집 건너 한집은 빨간 지붕을 하고 있네 뭐 그런 걸 기억할 수 있을테니까. 저가항공이었지만 맨 뒤에 아무도 없어서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제끼고 다리를 쭉 뻗고 갈 수 있었다. 한 밤 중 비행기에다 저가항공이라 식사가 없어서 중간에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최근 몇 년간 했던 비행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던 거 같다. 연착도 없었고 잠도 비교적 푹 잤다. 저가항공이지만 장거리라서 비행기가 크다면 일찍 표를 사고 추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좋은 자리를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팁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무리 비행 컨디션이 좋아도 내리고 나면 볼이 야위고 머리는 땅에서보다 기름지고 눈이 퀭해지는건 왜 일까.. 

오늘은 신랑 친구 H씨와 N씨가 공항에 데리러 와주고 점심도 사주고 은행 계좌도 여는 걸 도와주고 폰도 개통할 수 있게 해주고 저녁도 사주고 게다가 온종일 차로 태워서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해주었다. 저녁으로 먹은 피자랑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눈이 번쩍 떠졌다. 세상에 램하고 오이하고 달콤 매콤한 소스를 겯들일 생각을 하다니 호주 이 녀석들 제법이구나. 간식으로 비네거 칩하고 팀탐에 우유까지 선물로 사주었다. 잊지 말고 다음에 꼭 보답해야지. 당장 유심을 사든, 계좌를 만들든 물을 한 병 사먹든 요즘에야 뭐든지 카드로 된다지만 땡전 한푼 없어서 당황하지 말라고 결혼 선물로 호주 달러를 환전해준 S씨 생각이 났다. 아직 쓰지 않았지만 아까 혹시나 써야할까 싶어서 그 고마운 마음과 센스를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눈알 굴리면서 노는 아이와 안정 애착은 형성되었으려나.  

오늘 또 하나의 에피소드. 집을 구할 때까지 살 단기숙소를 빌렸는데 우리가 부부라는 생각을 왜 못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신랑 혼자인 줄 알고 그 분이 잘못 계산해서 남자 다인실인지 일인실만 남아 있었다. 당장 어디로 갈 곳도 없고 방이 없어서 당황했는데, 너무 피곤한 탓인지 분노하지 못하고 멍. 아주머니가 굉장히 밝으시고 최대한 배려해주셔서 결국 우리는 지금 집주인 아주머니의 집에 주인도 없이 머물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오늘 단 하루라도 아무도 없는 조용한 스튜디오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 이 행운을 누리는 최고의 방법은 푹 자기! 차 없이는 다닐 수가 없는 곳이라 내일 아침에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모셔다주기 까지 하신다고. 짐 풀고 다시 짐 들고 다니는 건 약간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모든 것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와 친구 내외와 집주인 아줌마까지 감사할 일이 많은 하루였다.

자, 그렇다면 시드니에 대한 나의 첫 인상? 생각보다 너무 시골같고 평범해서 좀 의외다. 나는 베를린이나 도쿄 같은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뉴질랜드 같은 친환경적이고 목가적인 모습. 그런데 시드니는 좀 낡아버린 90년대 같은 느낌이다. 몰도 많고 몰에는 다국적이긴 하지만 아시안이 많아서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공기가 좋은 거 하나는 좋다. 내일 시드니를 둘러싼 강과 바다들을 보면 좀 달라질까. 누군가 시드니의 선셋에 매일 위로 받았다는 말에 나를 잡아 끌었던 거 같으니까. 



고마운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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